역사를 회상하는 두 방식에 대하여
김정락
미술은 때론 인간의 과거를 저장하는 보조기억장치로서의 역할을 한다. 작품의 예술사적 가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작품속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에 관할 때 미술은 그런 역사적 기록이 된다, 이 목적을 위해서 역사화(historia)라는 오래된 장르가 따로 존재하지만, 모든 미술은 자신을 만들었던 시대의 모습과 정신을 반영함으로써 보조기억장치가 된다. 그러나 역사는 사실 관계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시대의 정치와 사회 그리고 문화에 의해 각색되면서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래서 기록은 매우 교묘한 방식으로서 정치적이다. 대개 사람들은 `정치적`이라는 단어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예를 들면 촛불집회가 정치화되었다면서 그 순수성을 읽었다고 비난하곤 한다. 즉 정치성이란 순수하지 못한 음모처럼 들린다. 하지만 원래 이 집회는, 비록 어린 학생들에 의해 우발적으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정치적이었고, 그것을 비난하는 행위도 또한 정치적이다, 자신들의 이해와 의도를 발설하는 행위는 모두 정치적이다, 나는 이 정치성이 가지는 정당성에 대해 그리고 비정치성의 위험에 대해 두 작가의 전시회를 통해 논해 보려고 한다.

평범하면서도 낯선 이중적인 정서
김옥선의 <함일의 배(Hamel`s Boat)>는 2007년 촬영한 제주도에 와 있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1653년(효종 4년) 대만에서 일본 나가사키를 향하던 네덜란드인 하멜과 그 승무원들운 폭풍에 휩쓰려 제주도 산방산 해안에 도착했고, 제주도는 뜻하지 않게 최초로 외국인을 맞이하였다. 그들은 13년 간을 조선에서 보냈다. 1666년 탈출한 하멜은 귀국하여 자신의 표류기를 저술하였고, 이것이 유명한 <하멜 표류기>이다. 이 책 속에 나타난 조선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그가 조선에서 겪었던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그 짧지 않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에 대한 강한 페쇄성이었다. 그의 후손인 구스 히딩크가 2002년 한국의 월드컵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전 국민의 열력한 환호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역사다, 김옥선의 사진들은 현대의 모습을 통해 하멜의 체험을 유추해 보려는 것 같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이댄 작가에게 향한 외국인들의 모습은 너무나 천연덕스럽다. 그래서 이것이 사진작품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사진의 큰 포맷에 반하여 사진의 내용은 단견에 아마추어의 스냅사진에 가깝다. 약간의 연출된 흔적도 찾아낼 수 있었지만, 거의 핍진성에 가까은 사실주의의 사진이다. 배경도 작가의 미학적 감수성을 의심하게 할 만큼 무던했다. 그러나 이런 범상함 속에 스며든 기억의 파동은 점차 각을 세워 머릿속을 흔들어 놓았다.

작가의 발언에는 이제부터 힘이 들어간다. 이름을 얻으면서 구체적인 지시체가 된 인물들은 그들의 존재를 우리에게 던진다. 음악가인 안나와 레이, 자연주의자 리치, 인본주의자 케빈 등등. 그러나 사진들은 원 제주도민과는 약간 다른 이방인들의 포즈를 노츨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니고 들여온 문화적 정서와 태생적인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거나, 같이 있어도 소외된 둣 보이는 그들의 시선이 그랬다. 이 사진들은 그래서 평범하면서도 낯선 이중적인 정서를 야기했다. 작가는 여러 다양한 외국인들을 순간에 포착하였다.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주도 안에 많은 외국인들이 살아가거 있다는 것을 충분히 전달할 만한 사진들이었다. (비록 몇 인물은 두번 정도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많은 외인들이 그곳에사진들은 묻는다. 아직도 우리가 낯선가아니면 우리를 보는 그들의 시선이 그런가언급한 것처럼 이 평범한 사진들은 그런 물음을 던지며, 우리 정서 깊은 층속에 무겁게 눌려 있는 비루한 민족주의를 대면하게 한다. 그리고 근대하 속에 길러진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 자기애와 다른 이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이질감을 훈련받아 온 심리와 태도에 대해서도 반문하게 만든다.

김정락, 『아트 인 컬쳐』(2008년 7월호, pp.82 -85)
BACK TO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