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와 체류사진적으로 정박하다.
최연하
정말 자유로운 삶은 부재 속에서의 삶일까.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졸음과 갈증이 한꺼번에 몰려올 즈음에 김옥선의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지금 막 검도연습을 마친 한 백인남성의 평화로운 휴식 앞에서 주름진 존재의 표피가 팽팽하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사진 속 남자의 충일된 감정은 나날의 구체성에 덜미 잡혀 있던 시원始原의 갈증을 폭발시켰고, 존재의 꼭대기에 닿는 꿈을 꾸게 하였다. 결국은 다시 주저앉아 일상의 존재로 귀환하여 늘 그립고, 늘 쫓겨 다닐지라도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결핍으로서의 존재를 다시 직면하게 하는 김옥선의 신작, <함일의 배(Hamel`s Boat)>는 묘한 감기(感氣)기운으로 가득하다. 첫 번째 작업 <Woman in a Room>(1996)으로부터, <Happy Together>(2002)와 <You and I>(2004)까지, 그녀의 작품이 현실의 공간에서 나/관객과 너/작가와의 관계와 시선에 의지하고 있다면 신작 <함일의 배>(2007~8)에서는 서로 삼투와 배제의 과정을 거치며 섬세한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현실/이상의 대립을 갈증/그리움의 대립으로 치환시키며 그동안 존재태로 보여줬던 인물들을 운동태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구체적인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대자연의 풍경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새삼 깊은 시선으로 이끌며 그들의 실존을 온전하게 포착하면서 다시 생성되고 운동하는 이미지로 변모시킨다. 구체적인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일까작가에게 그런 의문을 던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구체적 일상에서의 탈출은 표류와 체류를 하루에도 수 십 번 반복하게 하는 시원의 갈증이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의 겉돌고 헤매던 하멜일행이 처음 발을 디딘 땅 제주, 더 이상은 밀려날 수 없는 마지막 선(線)이 그어진 곳에 김옥선이 정박한지 13년째, 풍경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생의 일부가 된다고 했던가.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작업은 진화하고 있었다.


첫 번째 응시 - 한 여자가 방 안에 있네

김옥선 작업의 키워드는 여성, 공간, 일상, 신체, 젠더, 정체성, 주체 등으로, 작가는 일상의 공간에서 개인과 사회․문화적 관계를 끊임없이 사유하며 작품을 발표해왔다. 김옥선의 첫 작업 <Woman in a Room>(1996)이 발표되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사진계에서는 반쯤 눈을 감은 채 애써 등을 돌렸고, 몇몇 미술잡지에서만 그녀의 작업에 겨우 시선을 주었던 때였다. <Woman in a Room>에서 보여준 것은 일상의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정면을 응시한 채 전라를 드러낸 평범한 여성들의 누드사진이었다. 사진 속 인물이 관객과 대면하는 방식은 마네의 <올랭피아>나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 워커에반스의 <소작인의 아내>가 우리와 대면하는 방식 중 어느 것과도 닮아 있지 않아서 혼돈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모종의공유된 응시로 분명 유혹하는 시선은 아니었다. 이 작업에서 김옥선은 놀랍게도 응시당하는 사람을대상으로 만드는 응시의 권력을 전복시키고 있다. 몸은 억제되거나 부인되어야만 하는 것도, 단순히 용기나 표면이 아니라 타자와 다른 대상에게 열려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메를로 퐁티의 말처럼 몸은 결코 단순한 대상이 아니고살아진 의미들의 집합이고 그 의미에 있어서 고정되거나 단순한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형으로 완전히 살아지는 것이다.

이렇듯 <Woman in a Room>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관람자가 겪었던 혼돈은 이제껏 남성, 백인, 서구세계를 대표했던 권력적 응시를 되받아치는 사진 속 발가벗은 여성의 응시 때문이었다. 작가는 타자성을 제거함으로써 실존으로 가득 차있는 몸을 발견하게 했다. 다시 메를로 퐁티의 말을 인용하자면 <Woman in a Room>에 나타난 몸은 이 세상의살이고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극히실체적이며육체적인 것이 된다. 90년대 미술계에서 몸의 담론은 자기 동일성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타자를 지향하고 그로써 형성될 세계에 대한 영역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신체의 은유와 환유를 통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발표되었고, 특히 여성 사진가들은 남성과의 차이를 부각시킬 때 가장 유력하게 기능하는 보루로서 몸을 선택하기도 했다. 김옥선의 작업이 주목된 것은 여성을 복원한다는 문제가 서구적 페미니즘 담론을 앙상한 논리가 아닌 육체 자체의 고유한 힘으로 표현하되, 그녀의 현실 경험을 실재성으로 거듭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사진의 한 경향이 남성 중심적 세계의 논리를 지속적으로 어긋나게 만들고 그 논리의 존재들을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남성적 힘에 의해 억압되고 잠재되어 있는 새 세계의 가능성을 환기하는 효과를 갖게 하였다면, 김옥선의 사진은 여성적 삶과 현실을 동일화하고 치유하는 능력을 표상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Woman in a Room>을 두고 사회적 인식과 윤리의식의 잣대로외설이냐, 예술이냐의 시비가 아직 끝나지 않을 때, 대학원을 갓 졸업한 작가는 사진계에 몇 가지 화두를 던져놓은 채, 홀연히 제주도에 정주하게 된다.


두 번째 응시너와 나는 지금서로 행복하다

앞선 김옥선의 작업이 삶의 실존적 의미를 충만하게 하는몸의 공간으로 집약되었다면 <Happy Together>(2002)와 <You and I>(2004)에서는 삶으로서의공간과 삶의 다양한형태를 묘사하는데 집중한다. 이는 인물의 내면적인 분석과 외부에 대한 집요한 응시로 이어지는데, <Woman in a Room>이 작품 속 인물과 관객과의 주고받는 응시의 긴장이었다면 <Happy Together>와 <You and I>에서는 작품 속 인물간의 응시에서 관람자의 응시까지 다양한 시선의 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결혼생활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Happy Together>연작은 외국인과 결혼해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여성, 혹은 아시아 여성들의 삶의 공간에서 촬영한 초상사진이다. 작가는 한국여성들이 외국인과 결혼하면서 파생되는 사회적, 문화적 생활양식에 대한 보고서로 작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Happy Together>의 연장선상에 있는 <You and I>는 PS1국제 스튜디오 프로그램(2003~4, 뉴욕)의 참가를 계기로 작업한 것으로, 한국과 뉴욕에 거주하는 국제결혼한 커플들(한국여성 외에도 일본,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권 여성들뿐만 아니라 게이, 레즈비언 등 동성 커플들까지)의 일상의 단면을 아주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두 작업에서는 기술적인 중립성을 담보해내며 작품 안에서 사람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한편 삶의 유대와 보편적인 순간들에 대한 의미를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는데, 이는 한 프레임 안에서 인물들의 관계와 문화적인 구성의 단서가 되는 의식, 제스처, 환경들을 포함시키며 의미를 심화하고 있다.

<Woman in a Room>에서의 인물의 응시가 응시의 권력을 강조하기보다 마주보는 사람에 대한 책임을 제안하는 개념은 <Happy Together>와 <You and I>에서 나-너의 관계로 대신하고자 하는등가의 개념으로 발전된다. 이 응시는 바라보기의 결과를 검토하게 하면서 바라보는 우리 자신을다시바라보게 한다. 이는 분명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듯 자신을 볼필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작가는 차이로서가 아니라 일치로서, 단순히 남자/남편, 여자/부인으로 대표되는 통속적인 특징들이 아니라 독립적이면서 상호주관적인 차원에서 작품을 들여다보게 한다응시라는 말은바라보기나주시하다와 같은 유의어에 비해 길고 열정적인 시선에 대한 말로, 미술작품을 응시할 때 뒤섞이는 인식과 쾌감의 강도를 환기시킨다고 한다.(마거릿 올린, 1996) 김옥선 사진의 응시는 작품을 대면하는 관람자가 작품의 효과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도록 연출되었고 바라보는 자와 응시 대상의 행위가 작품의 주제가 되도록 하였다. 관람객의 응시가 모두 정면의 그녀/그에게 고정되고, 정면을 향하고 있는 인물은 재현된 이미지로서 상황을 서술하는 나레이터 역할을 해낸다. 김옥선의정면은 초기작품에서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하나의장치여서 연극적인 전략(관객이 응시의 구축된 특징을 일부러 인식하도록 만드는)에 의지함을 알 수 있다. 이를 강화하기 위해 작가는 정직한 조명과 대형 카메라의 깊은 심도(deep focus)에 의한 윤곽선의 견고함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응시풍경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생의 일부가 된다

그녀가 정주하게 된 제주도는 350여 년 전에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 1630~1692)의 <스페르베르새매라는 뜻을 지닌 배로 하멜이 승선한 배)호가 인도네시아를 떠나 대만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도중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정박하게 된 섬이다. 김옥선의 신작 <함일의 배>는 350여 년 전에 이 땅에 다녀간 하멜일행처럼 현재 제주도에 정박한 외국인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연일까. 김옥선이 제주도에 정박한지 올해로 13년째, 하멜이 조선땅에서 표류했던 햇수와 같다. 다이빙 샵을 운영하며 배를 만들고 있는 작가의 남편인 랄프(Ralf)가 제주도에 체류한지도 13년이 되는 해이다. 김옥선과 랄프가 삶의 터전으로서의 제주도를 선택했다면 17세기에 제주 해안에 좌초되었던 네덜란드 선원들에게는어딘지 모를그 어딘가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던 이 섬에 억류당하게 된다.

앞서 발표된 작업에서 김옥선은 낯설고 이질적인 국제결혼에 대한 전복적 언어들로 국제결혼이 지닌 비의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징표를 철저한 분석과 따뜻한 의미로 드러내고 감싸면서도 현실의 다층적인 측면을 보여주었다면 <함일의 배>에서는 열린 공간에서 생명의 향연을 펼치는 외국인들의 여가의 상황을 보여주며 각자의 한계를 충분히 넘어선 새로운 세계를 구성해내고 있다. <함일의 배>에서는 대부분 우리가시선을 거기에 둘 것을 허용하고 우리의눈이 충만함의 환영에 탐닉하도록 한다. 결국 <함일의 배>에서 응시란 투사되고 상상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응시는 관람자의 결핍에, 다른 존재를 통한 자기완성에의 욕망에 상응하고 능동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기꺼이 응시의 주인이 된다. 무엇인가를 방금 끝냈거나 또는 행함을 위한 포즈들은 우리 모두 공유하고 있는 자유를 향한 보편성의 실현 과정이다. 즉 한 존재가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관람자는 이번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이동과 뒤섞임의 과정이 <함일의 배>에서 새로이 획득된 이미지의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의 새로움은 현실의 새로움이다. 이미지의 새로움이 주체와 타자 사이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혹은 소통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실의 새로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옥선의 새로움은 저간의 여성사진은 물론이고 최근의 젊은 사진가들의 새로움과도 차별성을 갖는다. 이는 내면적인 분석과 외부에 대한 집요한 응시, 혹은 자기분석적이고 존재론적인 작가의 시선에서 발원한다. 김옥선의 <함일의 배>를 모종의완성이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새매를 뜻하는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하멜이 체류했던 제주에, 섬에 가면 새가 되고, 배를 타도 새가 되고 싶은, 인간의 표류와 정박에 대한 욕망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사진이다.

대상-타자를 향한 작가의 사유가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작가의 말대로변방(시골)에 살고있지만 무명의 시간 속에 정주하며 스스로 의연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최연하 (전시기획자)
Wolganssajin Mar. 2008 pp.7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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