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타고 삶을 유영하는 이들의 집
현정아
익숙한 것들 사이에 다소 의아스럽게 놓여있는 낯선 시선들. 끊임없이 무언가를 속삭이는 파란 눈 안에는 이곳까지 흘러온 그네들의 사연이 뚝뚝, 흐른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은 무표정 속에서도 많은 말을 건네며 그들이 놓여있는 공간과 더불어 현재의 상황을 덤덤히 이야기한다.

파란 눈의 ‘멜라니’는 순전히 우리 눈에 익숙한 것들 사이에 놓여 있다. 대부분의 한국 가정집 거실 바닥에 깔려있는 나무무늬 장판,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무난한 나무색 인테리어 자재들, 한국형 발코니 너머로 보이는 주택가 모습들. 이 모든 것은 다만, 우리에게 익숙한 집 구조일 뿐이다. 그 공간에 한쪽 팔을 축 늘어놓고 어딘지 모르게 무심한 표정의 여인이 앉아 있다. 멜라니가 살고 있는 이 집은 그녀 삶의 중턱쯤에 놓인 머묾과 휴식의 공간일 뿐, 정착과 정체성을 의미하던 기존의 ‘집’이 아니다. 그녀에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떠나고 머물고 다시 떠나는 것을 반복하는, 그야말로 ‘살면서 끝없이 방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작 ‘함일의 배’ 시리즈에서 제주도에 살고 있는 외국인의 모습을 찍었던 김옥선은 이 작업의 연장으로 신작 ‘No direction home’을 선보인다. 전작이 제주도의 야외풍경에 외국인들을 대비시키는 작업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들의 일상이 드러나는 집 내부로 들어갔다. 제주도에 머물며 살아가는 외국인들의 직업은 대부분 영어강사로, 이들은 학원이나 학교에서 제공한 원룸형태의 오피스텔에서 기거한다. 대부분의 원룸이 서양의 주거형태를 따왔다고는 하나, 내부 인테리어는 다분히 ‘한국스럽다’. 그곳에 살아가는 외국인들을 보며 아이러니와 흥미로움을 느낀 김옥선은 제주도의 푸른 바다 대신, 그들의 일상 공간을 배경으로 담기 시작했다. 익숙함과 낯설음, 편안함과 어색함이 공존하는 이 공간을 배경으로 김옥선은 그 속에 놓인 인물에 주목한다. 본래 인물 중심의 사진을 찍어온 김옥선의 신작은, 앞으로 그의 대표적인 인물사진으로 꼽힐 만큼 가장 전형적인 틀을 보여준다. 그동안의 작업이 주거 공간, 환경, 사회적인 상황과 함께 인물을 제시했다면 이번에는 그야말로 ‘인물사진다운’ 사진을 찍는데 주력했다. 이는 인물을 주 대상으로 찍어왔던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느낌표를 찍는 동시에 그동안의 시리즈를 정리하는 마침표라 할 수 있다.

정처 없이 흩날리는 삶의 순간들
뜻하지 않게 제주도에 표류해 수년간 억류생활을 보내야 했던 수백년 전의 네덜란드인 하멜(Hamel)과 달리, 오늘날 제주도에 정착해 살아가는 외국인들은 그들 스스로 이방인의 삶을 선택한 이들이다. 이유야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자신의 바람 속에서 삶을 유영하고 있다. 여기서 유영은 때때로 방황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작가는 이를 삶의 본질이라 여기며 그들 삶에 ‘No direction home’이란 이름을 붙였다.
‘No direction home’은 밥 딜런(Bob Dylan)의 ‘Highway 61 Revisited’ 음반에 수록된 곡 ‘Like a rolling stone’ 가사 중 일부이다. 밥 딜런의 일대기를 다룬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의 영화 제목으로도 쓰인 ‘No direction home’은 그의 정처 없던 삶을 대변하고 있다. 작가는 밥 딜런의 삶과 노래에서 그가 전하고자 했던 공통된 메시지를 발견해낸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갈망했던 삶, 그의 노래에 묻어나는 쓸쓸함 등이 이곳 외국인들의 내적 심리를 대변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제주도라는 타지에서 10년 넘게 살면서도 언제나 서울을 그리워하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은 그저 순간에 정착해 있을 뿐, 언젠가는 또 다른 순간의 정착지를 찾아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김옥선은 제주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그중에서도 미국과 캐나다 등 영어권 나라의 모델들을 대상으로 이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다소 뜬금없이 등장하는 종려나무 사진은 일종의 메타포로 볼 수 있다. 외래종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제주도의 상징이 된 종려나무. 그 모습 속에서 작가는 내면에 불어온 바람에 실려 낯선 타국에 뿌리를 내린 외국인들을 떠올린다. 바람이 불면 또 다시 떠나갈 테지만, 이 순간만큼은 두 팔 벌려 제주의 바람을 맞고 있는 그들이다.

미소가 아닌 마음을 짓는 표정
기존의 전형적인 인물사진을 떠올리면 애써 미소 짓는 인위적인 표정부터 생각날 것이다. 그러나 김옥선의 사진 속 인물들은 어쩐지 표정다운 표정을 짓지 않는다. 무언가를 애써 짓기보다는 내려놓은 듯한 느낌, 그 의외성과 의아함으로 오랜 시간 표정 앞을 서성이다보면 미묘한 감정들이 온갖 표정을 지으며 떠오른다.
김옥선은 모델이 ‘스스로를 포기하는 순간’을 기다린다. 카메라 앞에 선 모든 사람은 누구나 카메라를 의식하고, 자신도 모르는 인위적인 표정을 짓게 된다. 잘 나왔으면 하는 무의식적인 욕망, 허위의식은 어느 정도 촬영이 진행된 뒤 점차 사라지게 된다. 또한 작가는 촬영 직전, 자신의 작업 방향과 의도에 대해 모델과 충분한 대화를 나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은 그가 의도한 대로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인물사진으로 완성된다.
신작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인물이기 때문에 전작에 비해 인물의 거리가 가까워진 반면, 배경이 차지하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경은 사진을 읽어내는 강력한 키워드이다. 물론 극히 제한적인 소스들이지만 소품 하나하나는 그 인물을 읽어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작은 원룸 안에 그들이 갖추며 살아가는 최소한의 것들을 보여주며, 그들을 둘러싼 삶의 풍경을 짐작하는 것이다.

수많은 물음 끝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다
첫 번째 작업이었던 ‘Woman in the room’을 제외하고 김옥선의 작업에는 외국인이 매번 등장한다. 그 첫 등장은 두 번째 작업이었던 ‘Happy together’시리즈부터이다. 국제결혼한 커플들을 찍은 이 시리즈는 외국인 남편과 살고 있는 작가 자신의 사소한 물음들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가령 다른 국제결혼 커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후 ‘함일의 배’ 시리즈 역시 근본적으로는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에 답해가는 과정이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 처음으로 배를 만드는 외국인이 있는가 하면, 자신보다 더 제주도를 유익하고 즐겁게 활용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보며 그들이 정의내리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사진을 통해 묻기 시작했다. 그 작업이 바로 ‘함일의 배’였고, 그것의 연장에서 ‘No direction home’이 제작되었다.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작가는 스스로가 생각하지 못한 삶의 새로운 방향성을 발견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가치, 가령 안정된 직장, 넓은 평수의 집, 좋은 자동차 등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자유’였다.
‘No direction home’은 외국인이 등장한 그간의 시리즈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그들을 지켜보며 품어왔던 물음에 어느 정도 답을 내린 후, 또 다른 세계를 응시하기 위함이다. 이 마지막 완결편은 1월7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의 연속기획전인 ‘SPECTRUM’에서 감상할 수 있다.


글|현정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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