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의 여자
김승곤
여성은 언제나 남성 위주의 권력적인 시선에 의해서 지배되어 왔고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여성의 누드사진도 거의 대부분 남성 사진가들에 의해서 찍혀져 왔다. 누드사진이 이처럼 시선의 지배와 피지배라는 이항대립적인 구도를 가지고 진행되어 온 것임을 상기할 때, 여성 사진가에 의해서 찍혀진 이 사진들은 보는 사람을 당혹하게 만든다. 그러나 더욱 당혹스러은 것은 그것을 찍은 사진가가 여성이라는 이유때문이 아니라, 그가 찍은 사진 때문이다.

현실적인 몇 가지 문제들을 덮어둔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에는 적어도 사회적 법률적인 수준에서는 남녀간의 성차가 없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체의 표현에는 아직도 많은 제약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여성이 여성의 알몸을 찍어 보여주는 것은, 여성이 꽃이나 정물의 사진을 찍는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대부분의 사진 감상대중(그런 것이 있다면)이나 관헌들은 그리이스 나신 조각상과 20세기 말에 표현되고 있는 누드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인체와 성에 대한 개념과 표현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여성에 대한 현대인의 의식 자체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왜 누드가 그처럼 번번히 현대예술의 주제로서 다루어지고 있는가에 관한 것도 이들의 관심 밖에 있다. 따라서 이 사진들이 그들을 위해서 찍혀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한 일이다.

이 사진들은 물론 회화적인 평가와는 전혀 무관한 곳에 위치한다. 회화에서 모델들은 미적 가치관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소재일 따름이지만, 이곳의 모델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해 보여주기 위해서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사진은 회화와는 달리 순식간에 대상의 모습을 정착시킨다. 사진의 스냅성은 회화에서는 불가능한 사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바로 그런 사진의 직관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델의 시선은 곧바로 카메라쪽을 향하고 있다. 그들은 남성들에게 보여질 때 취하는 것과는 다른 포즈을 취하고 있다. 이 사진에서는 부드러운 곡선이나 렘브란트의 광선에 의해서 드러난 부드러운 피부, 꿈꾸는 듯한 표정, 수치심을 가리고 앉은 여성다운 앉음새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정직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모델들은 남성들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그런 정형화된 여성상이 아니다. 그들은 남성들의 기대와는 달리 감미로운 표정을 짓거나, 의상으로 꾸며지거나 광각 렌즈에 의해서 미학적으로 왜곡되어 있지도 않다. 그들은 다소곳이 눈을 아래로 내려 깔고 있지도 않다. 정면으로부터 카메라를 (그리고 사진을 보는 사람을 ) 직시하고 있는 그들의 눈길은 우선 보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 뿐 아니라, 거부하기 어려운 힘으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그래서 감상적인 것이 아니가 실존적인 감정이다. 이 사진들은 주정적인 태도가 아니라 객관적인 (그렇다고 해서 관찰자나 분석자의 눈은 아니다.) 시선에 의한 다큐멘터리하고 할 수 있다. 즉, 이 사진에서의 모델들은 심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이상화된 여체로서 보편화시키기 위한 예술 소재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살아 있는 실체로서의 여성인 것이다.

물론 한두 마디의 말만으로 그들이 간단히 옷을 벗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모델도 사진가도 별다른 예비지식도 선입견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러 사진에 뛰어들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그들은 동네의 슈퍼마켓이나 미장원 모퉁이를 돌아나오면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여성들이다. 그런만큼 이들 사진에서 받는 충격은 더욱 파괴적인 강도를 가지고 있다. 많은 것으로 이 사진을 수식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진 그 자체가 일체의 수식어를 배제한 개체의 가장 정직한 모습을 세련되지 않은 인공광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진에는 모델이 된 여성과 사진가와의 스트레이트한 관계가 나타나 있고, 그것은 보는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직접적으로 개입된다. 그것은 그 강한 밀도로 인해서 어느 순간 균형이 무너져 버릴듯한, 다소 위태로운 긴장감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이 사진들은 한 세기 반 동안 '예술사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체를 심미적인 대상으로서 이상화하거나, 아니면 현대 사회에 범람하는 광고나 포르노그래피에서와 같은 성적인 대상으로서 물신화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들이 여성의 손에 의해서 찍혀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분명, 그는 물질와 정신의 양면에서 해방된, 1990년대라고 하는 한국사 가운데에서 가장 과격한 시대에 의해서 세례를 받은 세대의 사진가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끌어내지 않는다 할지라도, 남성의 논리에 의해서 찍혀진 것이 아닌, 이 당돌한 사진들은 여성에 의한 새로운 여성성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읽을 수 있는 어떤 중요한 단서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서양의 미술사에서조차 화가들에 대한 성적 차별은 엄연히 존재해 왔고, 그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여성 화가들에 의한 어떤 표현의 활동들이 전개되어 왔는가를 생각할 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진들을 우리에게 놀라움을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김옥선은 주부 사진가이다. 그는 어쩌면 이들 사진에서 사회통념이나 인식과 같은, 자기자신에 대해서 부과된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통해서 형성된 자신으로부터의 탈츨을 기도하거나, 또는 남성에 의해서 길들여진 것과는 다른 안쪽에 잠재된 자신의 모습을 같은 여성의 꾸며지지 않은 신체를 통해서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쨋건 그녀의 사진이 남다른 신선함과 충격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의 사진이 사진에 의한 여성성의 표현 분야에서 몇 년이고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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