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힘
백지숙
디카와 폰카가 필수품이 되고, 싸이와 블로그가 각광받는 미디어가 되고, 포토샵과 일러스트가 이미지의 기초문법이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에서, 김옥선의 간결한 스트레이트 사진은 새삼 고전적인 것으로 보인다. 또 요즘처럼 사진작품들이 스펙터클화하고, 인화방식이나 프레임방식이 다채로워지는 상황에서, 김옥선의 사진적 스케일이나 매체에 대한 이해방식은 미술보다는 여전히 사진의 본령에 충실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누드사진이 일상화되고, 국제결혼과 동성애가 문화적 이슈가 되며, 혼혈이 새로운 문화적 아젠다로 떠오르고 있는 맥락에서, 김옥선의 ‘맨몸’ 사진이나 국제결혼을 주제로 한 연작 사진은 다분히 동시대적인 문제틀을 갖는 사진작업으로 보인다.

김옥선의 이러한 사진다움은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우선, 김옥선의 사진작업은, 어떤 다른 매체도 아닌, 사진만이 가능하게 하는 일정한 ‘사실들의 구성’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그 사실들을 구성하는 방식이 무엇이냐 인데, 김옥선은 종종 이를 “있는 그대로”를 찍고자하는 태도로 집약해서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사진가라는 존재가 개입되는 이상,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드러내는 상태란 원천적으로 획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연이나 순간적인 포착에 의해 궁극적으로 드러나는 객관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사진적 과장이나 인공성을 덜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한층 효과적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얼굴의 웃음, 긴장한 몸 등의 신체적인 표정에서부터 성장한 옷과 단정한 인테리어 등의 공간적 지표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행복과 사랑 따위의 가치 등,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나 동의하고 있는 사진적 꾸미기를 김옥선의 사진은 주의 깊게 배제한다.

그 대신, 김옥선의 사진에서 강조되는 것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인물의 시선 그 자체이다. 물론 이때 카메라의 렌즈를 향하고 있는 시선은, 카메라 뒤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작가의 눈, 나아가 완성된 사진을 보고 있는 ‘우리’의 육안과 마주치면서 엄정한 기능들을 수행한다. 카메라 앞에서 맨몸을 천연스럽게 드러내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성들, 외국인 남편을 배경으로 밀어둔 채 앞을 쳐다보고 있는 한국여성들, 그리고 서양인 파트너를 아웃 포커스로 하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동양인들은 그 시선을 통해서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려한다. 하지만 막상, 이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면 작가가 그 이야기의 개별적인 내용보다는 특정한 사진적 구조 자체를 인물을 통해서 육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의 포즈와 장치들 그리고 시선의 처리가 반복되는 사진 아카이브의 축적이, 인물의 개성을 약화시키고 구조의 유사성을 드러내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김옥선의 사진에서도 요즘 사진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연극적인 상황연출이 동원되긴 하지만, 이 경우는 지극히 소극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큰 차이다. 여기서 연극적 공간은 예기치 못한 사태나 급박한 일들이 금방이라도 벌어질 듯하다거나, 혹은 비밀과 거짓말로 가득 차 있는 종류의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연극적 지표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이 지겹도록 루틴하게 흘러가는 장소로서 사진 표면 위에 압착해 있을 뿐이다. 그리곤, 등장인물의 개별적인 시선들이 마치 원근법의 소실점처럼 그 조용한 화면 전체를 장악하여, 사진을 보는 시선들을 주체로 호명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 시선에 우리의 시선이 조응하는 순간,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어떤 교섭과 저항의 영역이 마치 스파크처럼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김옥선의 사진에서 이러한 시선의 호명은 젠더와 가족, 국가 따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큰 제도를 향하기보다는, 그 정체성의 구성 자체를 비껴보게 하는 다분히 메타적인 층위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수술자국과 상처와 늘어진 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여성들의 차분하고 도발적이며 일면 당당한 시선과 자세는 오래된 관음증적인 시지각 방식과 누드의 컨벤션을 과감히 깨버린다(<Woman in a room>). 또한 한국여성의 주부다운 피곤함과 안정감이 교차하는 그 미묘한 볼륨감은 절대적으로 평면화된 외국인 남편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면서, 국제결혼에 대한 환상과 호기심 또는 편견을 무력화시킨다(<Happy Together>). 그런가하면 다양한 인종적, 성적, 연령적 구성을 보여주는 각 커플들의 보다 개성화된 포즈들은 그 자체로 가족제도에 대한 단일한 합의를 해체해 버리는 효과를 갖는다(<You & I>).

특히 김옥선의 사진촬영이 진행되는 장소의 현장성은 그의 사진다움이 지닌 속성을 이중으로 인화해준다. 통상적으로 방이나 집은 일터나 사무실의 공적 공간과 대비되어 가족과 개인의 휴식을 위한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으로 표상된다. 그런데 김옥선의 카메라는 그러한 사적 장소 안으로 조심스레 틈입하여 이를 훤한 공공의 영역으로 설득해 낸다. 혹시나, 그 방식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집을 소개하는 텔레비전의 주부대상 프로그램과 유사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에서 이들 명사의 인테리어는, 그들의 사생활이 그렇듯이, 뒤집혀져 있는 엑스테리어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들의 명성을 향한 ‘일반인’들의 선망이야말로 끊임없는 인테리어 바꾸기 혹은 이사를 부추기는 교환가치로 기능한다. 그런 점에서 ‘새집 증후군’은 계속해서 교환됨으로써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과시와 선망의 이데올로기 효과에 다름 아니다.

그에 비해 김옥선의 카메라에 잡힌 방들은 공사 구분의 칸막이 자체를 제거해버리는 방법론을 체화시키고 있다. 가령, 방송국의 카메라는 사적공간의 최후 보루로서 냉장고 문을 개방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한다. 반면에 김옥선의 카메라는 냉장고라는 틀을 반복하여 재현함으로써 그 차이와 유사성을 가로지르게 하는 효과를 내고자 하는 쪽에 가깝다. <리빙 룸> 연작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동일한 집의 구조 속에 몇 가지 인테리어와 가구들, 장식물들, 의상들이 각기 다른 상사相似를 돌출시킬 때, 집의 유일한 실체는 바로 ‘가족 유사성’ 자체일 뿐이다. 서로 조금씩 비껴나게 닮은 집 안에는, 일상의 남루함과 비속함이 커튼과 벽지의 패턴을 통해 반복되고 있으며, 정착과 타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포스트모던 자아의 욕망은 가구와 각종 장비들로 물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때의 집은 “홈스위트 홈”도 아니며 “즐거운 나의 집”도 아니고, “자기 만의 방”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이제 집이라는 공간은 사적인 취미의 온상이자 피로회복의 침실이 아니라, 개별주체가 가족제도와 끊임없는 저항과 협상과 투쟁과 타협을 벌이는 자못 격렬한 권력의 장이 되는 것이다.

<Woman in a room>, <Living room>, <Happy together> 그리고 <You & I>에 이르기까지 김옥선의 사진 연작은 매 시리즈마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장치와 대상 또는 주제를 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옥선의 사진 아카이브는 그 자체로 기록보존적인 속성을 가지면서, 계열체적 대체물들을 쌓아가고, 통합체적 연결망을 만들어 낸다. 특히 여기서 만들어지는 의미의 네트워크가 갖는 특징은 그 사진들이 궁극적으로 사진 프레임 너머의 세계를 계속해서 지향하게 한다는 것이다. 종종 그의 사진에서 인물의 신체가 프레임 밖으로 삐져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 설정은 사진 속 개별인물들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 어떤 공통의 정서를 확인하려는 방향으로 우리의 감상법을 확장시킨다. 김옥선의 사진은 잘된 인류학적 보고서가 그렇듯이, 재현된 공간 안에 우리를 머물게 하지 않고, 재현의 공간에 대한 인식을 거쳐, 그 공간이 기초하고 있는 삶의 보다 광범위한 맥락을 계속해서 추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옥선의 사진이 까다로운 조사와 끈질긴 섭외 그리고 오랜 소통의 과정을 전제로 하며, 이를 통해 사진 프레임 안팎의 다양한 정보들을 함께 축적해간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공간적으로 사진 프레임 너머로 우리 시선을 유도할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사진 ‘이후’를 주목하게 하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김옥선의 사진적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분홍커튼 앞의 은미>, <수연과 딘>, 그리고 <히로코와 켄>은 그저 사진의 피사체에 머물지 않고, 사진을 통한 자기 ‘반영reflection’은 물론 각자가 가진 상처와 기억이 치유되는 경험도 가졌을 것이다. 이는 작가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의 사진에 강하게 반응하는 관객들도 유사하리라 생각된다. 김옥선의 작업은 무엇보다 사진이 갖고 있는 저 오래되고도 강력한 힘, 다름 아닌, 명료한 ‘사실들의 구성’과 그와 대면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각성에 기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사진의 힘이야말로 계속해서 사진이라는 매체가 세상의 변화와 나란히 움직이는 동시대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백지숙(전시기획,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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