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탐색하다 -사진가 김옥선
송수정
일탈
옷을 벗은 여자가 당당하게 카메라를 응시한다. 어쩌면 카메라가 여자를 응시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카메라를 향해 서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일상이 펼쳐지는 안방에서 혹은 거실에서 그녀들은 그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듯 자연스럽다. 도발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평범한 여자들의 몸이다. 실제로 사진 속 모델이 유명세와는 거리가 먼 작가의 주변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들먹이지 않고서도 이들이 스스로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이 벗어버린 것은 옷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선입견이다.
김옥선은 이 ‘Woman in a Room’이라는 작업과 함께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시작했다. 석사청구전인 이 작품이 1996년 공개되었을 때는 파격적인 작업 방식으로 인해 적잖은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삶의 모든 거추장스러운 시선을 떨쳐내고자 한 주인공들의 당당한 포즈는 그 논란 자체마저 무심하게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김옥선은 대학에서 우연찮게 사진에 입문했다. 대학 생활의 정점을 찍겠다는 심정으로 학생회관의 동아리방들을 여기저기 염탐하고 다니다, 마침 가장 인상 깊게 자신을 맞이해 준 사진동아리에 뿌리를 내렸다. 그곳이 트렁크갤러리의 박영숙 관장, 한미미술관의 송영숙 관장 등이 만든 오랜 전통의 ‘숙미회’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김옥선은 다큐멘터리 성향이 강하던 이곳에서 사진에 관한 다양한 고민과 방법을 접했다. 대학 졸업과 함께 월간지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한 것도 나름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다.

탐색
하지만 사진기자 생활은 채 2년을 채우지 못했다. 각오했던 것보다 바빴고, 예상했던 것보다도 의지를 반영할 여지가 훨씬 적었다. 결국 사직과 함께 대학원을 택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Woman in a Room’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김옥선의 작업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개인사가 시작된다. 바로 외국인 남편과의 결혼이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며 결혼을 할 때부터 예상은 했으나,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짝과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사노동을 반으로 나누는 일을 당연시하는 만큼, 생활비도 서로가 반반씩 책임져야 하는 합리적인 사고의 남편과 한집에서 사는 일은 서로가 자라온 문화적 사회적 차이를 실감하는 기회였다. 집안에서의 갈등과 조율이 두 사람의 선택을 책임지는 자리라면, 집 밖에서 맞닥뜨리는 편견과 오해는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많은 지난한 싸움을 의미했다. 이 과정에서 태어난 작업이 바로 ‘Happy Together’다.
김옥선은 ‘Happy Together’를 통해 남편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방인으로서 낯선 땅의 배우자를 선택한 사람의 마음을 카메라를 빌어 면밀히 관찰해 보고 싶은 김옥선의 욕망은 어찌 보면 그런 사람과 살고 있는 자신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외국인과 결혼한 동성 커플 혹은 동성애 커플로 이루어진 이 작업의 주인공 또한 ‘Woman in a Room’에서처럼 하나같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이 응시는 앞선 시리즈와는 다소 다른 낯선 긴장감을 유발한다. 마치 행복한 어느 순간에 일시적인 균열을 가하듯, 사진 속 두 사람은 한 곳에 머무르면서도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무심하다. 그러나 ‘따로 또 같이’라는 커플들의 존재론적 외로움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일상을 당당하게 공개한다는 점에서는 ‘Woman in a Room'의 주인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정해 놓은 사회적 통념 밖에 머무른다는 점에서 그들 모두는 비주류이자,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 표류하는 이방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표류
이 표류에 대한 고민은 김옥선의 후속작 ‘함일의 배’에서 훨씬 두드러진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제주도에 정착한 김옥선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제주도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만났다. 김옥선에 눈에 비친 그들은 배가 난파되어 무려 13년 동안이나 한국에 갇혀지낼 수밖에 없었던 함일(하멜)의 후예들이다. 물론 ‘함일의 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그들의 자발적 의지로 제주도에 머물지만, 기꺼이 낯선 곳에 정착했다는 점에서는 배를 띄어 먼 바다를 건넌 함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어를 가르치는 교수라는 직업을 버리고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된 김옥선의 남편처럼, 사진 속 인물들은 환경운동가, 영어강사, 여행가이드 등 다양한 목적으로 기존 삶의 경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땅에서의 표류를 선택했다. 자신의 삶의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작가에 비해 사진 속 주인공들은 훨씬 멀리 떠나온 인물들이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연고조차 없는 제주도에 정착했다는 점에서 김옥선 또한 그들과 심리적인 끈을 이어놓고 있다. 실제로 ‘함일의 배’ 연작은 제주도의 하멜전시장에 전시해 놓은 함일의 배 모형 사진으로 시작해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작가의 딸에서 끝이 난다. 마치 먼 조상에게로부터 삶이 유전되어 온 우리 모두는 끝내 정박하지 못한다고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이 표류하는 곳은 지리적으로 낯선 땅이 아니라 이질적인 문화와 시선들이 만나는 묘한 심리적 경계지점이다.

떠남
최근 김옥선은 포토넷에서 ‘No Direction Home’이라는 사진집을 출판했다. ‘함일의 배’가 주인공들이 가장 즐겨 찾는 그들만의 자연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면, ‘No Direction Home’은 제주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의 주거공간을 담았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마친 그들의 단출한 세간, 전형적인 한국식 인테리어를 배경 삼은 주인공들의 모습은 여전히 섞일 수 없을 듯한 묘한 불안과 그 모든 공간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자유로움이 동시에 얽혀 있다.
이제 김옥선은 자신의 삶의 방식에서부터 출발한 이방인 작업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말한다. 방 안의 여자로 작업을 시작해 정처 없이 떠도는 삶으로 김옥선 작업의 한 국면이 막을 내린다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작업을 통해 김옥선이 모색한 것은 자신의 집을 떠나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인물들에 대한 정체성 탐구이자, 그것은 곧 작가 스스로의 분신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중형 카메라를 사용하면서도 때로 스냅샷처럼 자유로운 이미지들은 그들의 삶에 개입하고 싶지 않는 작가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삶의 경계, 편견의 경계, 문화적 경계를 표류하면서 그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인물들에 대한 탐색은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해답의 실마리일 수도 있다. 물리적 보상이 따르지 않는 작가로서의 인생이 막막해질 때마다 김옥선 또한 결국에는 자신 삶의 주변부까지를 감싸 안음으로써 작업의 진정성을 높혀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작가가 시도하는 새로운 작업이 무엇이 되었든 그 또한 스스로의 삶에서 실타래를 뽑아내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속에는 더 이상 표류와 정박이 무의미한 한결 자유로운 모습의 김옥선이 담겨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_송수정(사진기획자)_계간 사진기자 2011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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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 태어난 김옥선은 숙명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전공했다. 2003년 PS1 국제스튜디오프로그램에 참여했고, 2007년에는 제6회 다음작가상을 2010년에는 제1회 세코포토상을 수상했다. 2008년 금호미술관 ‘함일의 배’ 전시를 비롯, 2010년 미국 산타바바라미술관에서 열린 ‘Chaotic Harmony’ 전 등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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