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은 어디인가?
신수진
우리는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디에 살 것인지,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할 것인지 등의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방법이 갈수록 개별화되고 있다. 지역 간의 이동이 자유롭고 직업군은 다양해졌으며 가족구성마저도 비정형화된 이 시대는 마치 선택지가 너무 많은 시험문제처럼 어느 답에도 확신을 갖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오래 전 선조들에게 생존의 문제가 지금 우리에겐 선택의 문제로 주어졌다. 문득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해진건지 궁금하다.

김옥선의 사진은 우리가 행하는 선택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먼저 등장인물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좆아 타인의 선택을 관찰해 보자. 제주도라는 작은 섬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최소한의 생활용품들만을 갖추고 아주 작은 집에 머무는 사람들.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 분명한 필수품이라 할지라도 미리 사서 저장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집을 두고 내일을 걸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신기한 일이겠지만 당사자나 비슷한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일수도 있다. 사진은 숨김없이 모든 것을 보여주지만 그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지, 어디로 떠나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정지된 사진 속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찍혀진 한 순간 뿐이다. 좁은 실내에서 화면을 가득 메운 주인공, 표정까지 감춰버린 그들의 모습은 실생활에 대한 단서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이곳이 정말로 이들의 실제 생활공간 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마치 임시로 지어진 세트처럼 그들의 공간은 단출하고 평면적이다.

설령 태어난 곳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방랑의 불안과 정착의 평온이 무엇인진 안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며 사는 이들도 역시 마찬가지일 게다. 집안의 살림살이는 그들이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은 적어도 그들이 기거하는 동안 그곳이 온전한 둥지임을 드러낸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얼굴로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반려동물을 키우고 춤을 추는 사람들은 집과 한 몸이 된 것처럼 보인다. 작가가 화면에 포함시킨 모든 대상에 고르게 빛을 주어서 주인공인 인물과 배경인 집을 팽팽하게 힘겨루기 시킨 결과이다. 김옥선의 사진은 인물과 주거공간을 동등하게 보여줌으로써 집은 인간의 영혼이 깃든 몸의 확장임을 역설한다. 작고 초라하기까지 한 집은 그들의 영혼이 깃털처럼 가벼운 자유를 지녔음을 암시한다. 누구나 자유를 꿈꾸지만 이런저런 이유에 발목을 잡혀 선택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가벼운 자유보다는 무거운 안정을 전략적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다른 한편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으로 자유를 꿈꾼다.

김옥선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법은 명료하다. 자유와 안정 사이에서 어느 편에 속하는 선택을 하던 간에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맘만 먹으면 또 다른 타지를 향해 여행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떠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사진 속 그들의 에너지는 바깥을 향하고 있지 않다. 안으로 안으로 집안 깊숙이 자신 깊숙이 파고드는 듯한 내성적 침잠의 기운은 그들이 얼마나 안락함에 목마른 자들인지 고백해온다. 지금 어디에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에 있건 우리는 어느 한쪽만으로 살 순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이며 첫 번째 관찰자인 김옥선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집에서 낯선 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마도 스스로 선택했거나 그렇게 하지 못했던 삶에 대한 통찰일 것이다. 그렇게 김옥선의 작품은 언제고 떠나야 하거나 떠날 수도 있다고 여기는 자의 불안과 지금 여기에 충실히 머무는 자의 평온이 교차하는 풍경이 되었다. 그녀의 작품에서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결국은 스스로의 행복을 위한 숙제이며, 행복은 그 숙제를 열심히 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에 대한 일깨움이다. 사진 속의 그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옥선, 그리고 그녀의 눈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다.


신 수진(사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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