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적 삶과 활동을 촉진하는 흐름의 공간
임정희
1630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 한국명 함일)은 동인도 연합회사 소속의 선박에서 포수로 일했다. 1653년 배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수십 명의 일행들과 함께 제주도에 표류했다. 이듬해 서울로 압송되어 훈련도감에 편입되었고 이후 전라도 강진과 여수의 병영에 배치되어 노역에도 종사했다. 표류 13년 만인 1666년, 동료 7명과 함께 탈출에 성공하여 일본에 도착한 그는 간단한 조사를 받고 이듬해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1668년 귀국한 뒤『하멜표류기』로 알려진 기행문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한국의 지리풍속정치군사교육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하멜은 1692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350여년이 지난 현재 제주도에는 거주를 강제당했던 하멜과 달리 자발적으로 거주를 선택한 외국인들이 많아졌다. 정착을 거부했던 하멜은 바다의 국경을 넘기 위해 십 수년의 시간을 소요하면서 고통을 감수하고 이동의 권리를 실현시켰다. 그러나 2000년대 제주도에는 매일 매 시간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하늘길을 따라 바닷길을 따라 수많은 하멜들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이동성의 급격한 증가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수단, 그리고 신체를 접합하는 방법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포착하기란 수월하지 않지만 한국 사회의 현재적 삶을 규정하는 새로운 조건이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김옥선의 이번 전시함일의 배는 이동의 동시대적 현상들을 다루면서 상투적인 제한들을 넘어서고자 한다.

정착보다는 이동이 일상화된 이들이 유목민들이기 때문에 이동의 시대는유목의 시대로도 불리운다. 그러나 정착과 유목, 멈춤과 이동이 분리되어있거나 대립하고 있을 정도로 삶이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유목민들도 한 곳에 일시적으로 멈추어 살고, 정착민들도 때때로 어느 곳으로 이동하며 살아간다. 또한 이동과 멈춤이 권리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의무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지므로 유목적 삶과 정착적 삶의 성격과 본성이 단순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이동의 속도가 빨라지고 이동의 빈도수가 많아졌다고 해서 현대를 유목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유목적 삶에 대한 의도된 표상들은 어느 때보다도 이동의 양상과 이동의 속도, 이동의 형태를 집요하게 상투화하고 협소하게 제한시키면서 사회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유목적 삶에 관한 상투적 표상 하나. 광고 화면에 등장하는 커리어우먼은 로마에서 아침을 맞고 낮에는 파리의 회의에 참석하며 늦은 밤 도쿄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지인들과 사교를 즐긴다. 이동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회적 성공에 더욱 가까워진다. 유목적 삶에 관한 상투적 표상 둘. 여행사들이 판매하는 각종 여행상품들은 짧은 여행기일 동안 최대한 많은 여행지를 돌아다니게 될 것이고 여행은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계획된 일정표가 보장한다. 이동의 형태는 개별적이고 일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주기적 반복을 통해 가시화됨으로써 더욱 분명해진다. 유목적 삶에 관한 상투적 표상 셋.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은 언제 어디서나 접속을 보장해 주고, 출장가는 비행기 안 노트북, 사무실의 빔 프로젝터, 그리고 거리의 핸드폰은 지속적인 활동의 연결장치가 되어준다. 이동의 양상들은 이동의 목적에 종속되어 있어서 각 이동양상의 차이는 배제되고 통합적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현대 한국사회에서 상투적이고 정형화된 방식으로 구축되고 있는 유목적 삶의 이미지에는 뚜렷한 삶의 목적성이 중심원리로 자리잡고 있어서 일시적이거나 우발적인 삶의 흔적은 배제되고, 모든 개인적이고 상황적인 특징들은 사라지며, 주변환경은 순수하게 상징적으로 편입되고 있다. 심지어 신체적 속성을 벗어나 정신적인 이동을 부르짖고, 부의 축적과 권력의 행사가 용이한 곳을 찾아 이동하고, 영토의 소유와 확장을 위해 이동하는 것도 유목에 대한 사회적 지표가 되고 있다.

이동의 목적이 고착되어 있는 삶은 이동의 방향을 어디로든 향할 수 있게 하는 자유로운 삶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활동적인 흐름을 막는다. 방향을 제한하고 강제하는 이동은 법과 질서의 울타리를 세우는 권력의 공간을 만들어내겠지만, 울타리를 걷어내고 새로운 삶을 창출시킬 수 있는 능력의 잠재력을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김옥선의함일의 배사진작업들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트렌드처럼 부상하고 있는 유목과 그 유목이 상정하는 리얼리티의 현장이라는 것이 쉽고 빠른 성공, 많고 넓은 풍요, 잡티없는 완벽함이라는 사회적 욕망에 의해 투사된 소리도 없고 맛도 없으며 냄새도 없는 허구적 리얼리티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를 질문하게 한다.

그러나 김옥선의 이번 전시는 이동의 경계들을 논쟁적으로 쟁점화하는데 맞춰져 있다기 보다 상투적이고 정형화된 사회적 관습에 가려지고 접혀진, 유목의 사회문화적 실제공간을 펼쳐 보이고자 한다라는 제목의 여러 차례 전시에서 이미 보여주었듯이 김옥선의 사진들은 리얼리티 자체와 혼동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 이미지를 생산하지도 않고, 작가의 손질을 강조하지도 않으며, 주관성의 기치에 포섭된 양식과 방법들을 통해 고유한 미적 기준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작품의 아우라를 확보하기 위해 하나의 특수한 맥락화를 시도하는 의도적인 문화기획에게 자리를 내어준 적은 더구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업들은 사진을 사회적 제도로서 의식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사진의 진보적 잠재력을 매번 다시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힘이 있다. 작업 속에서 작가는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인 의식이 되어 세계와 비판적 거리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 세계의 일부로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양한 이야기들로 대체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동이 제한된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착지에 매어 살던 시대, 이 조선시대조선의 경계를 벗어나기 위해 네덜란드인 함일이 제작하였던 배는 이동의 삶을 지원하고 영속가능하게 하는 현실적인 조건들을 일컫는다. 상투적이고 정형화된 유목적 삶의 이미지들에서 비현실화가 더욱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기 때문에함일의 배는 삶의 중량감과 물질성을 벗어버리거나 제거하지 않는다. 또한 정착의 필연성을 엄격히 주장하는 조선의 사회와 지리적인 확장에 목숨을 걸었던 네덜란드 사회 사이의 이원분리를 전제하지 않으며, 이 사회에서 저 사회로의 이동을 목적론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오히려함일의 배는 삶의 목표 지점보다는 삶을 지탱하여 주는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수많은 공간들, 즉 이동의 궤적을 중시한다. 이 흐름의 공간들(혼자 걷는 눈 덮힌 산, 벗은 몸으로 맞는 바람, 텅 빈 바다 냄새, 매일 들르는 동네 수영장, 스킨스쿠버의 바다 속, 집의 옥상, 텃밭 등등)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유목적 삶과 활동을 촉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함일의 배에서는 한편으로 다양하고 다중의 목적을 가지는 이동의 문제를 보다 광범위하고 근원적인 인간의 활동을 통해 거시공간적 문제로 종합하려고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동의 문제를 보다 미세하고 구체적인 인간의 신체적 활동을 통해 미시적 공간의 문제로 다룬다. 신체는 인간 자신의 내부에서나 환경 속에서 질서를 창조할 수 있는 미시적 공간으로서, 자신을 지탱하고, 자신을 생산하고, 융해하는 과정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한다. 신체의 움직임과 기능이 다른 사물과 다른 사람, 다른 순간을 결합시키는 방식을 통해 기술적이고 상징적인 체계로 발전하면 이동은 오토바이나 요트 같은 단순 사물을, 그리고 대낮 숲속이나 초저녁 바다에서와 같은 주어진 순간을 넘어선다. 모든 시공간이 하나로 이어지고 행위의 개별 차원도 넘어서게 된다. 개별자의 수명 조차도 넘어서서 죽더라도 죽지 않는다. 그래서지금, 이곳의 나무는아직, 저곳에서는 싹일 수 있고지금, 이곳의 목초지는이미, 그곳에서는 삼림일 수 있다.

함일의 배가 보여주는 이동과 유목은 신체의 움직임을 요구하는 이동에서부터 신체의 움직임을 덜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기술적이고 상징적인 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이동을 속도와 양상, 형태에 따라 설명하는 상투성과 협소함은 벗어나 있다.

현재 제주도를 유동적인 거주지로 선택한 외국인들은 그들의 거주 이유로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 특히 바다를 꼽는다. 이들의 일상생활은 그래서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정착민들보다 오히려 자연과의 교류밀도가 높고 자연을우리 공간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외국인들 모두가 동일한 문화적 가치를 보유하거나 문화적 관행들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또한 외국인들 모두가 동일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동일한 종교를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동적 거주자 집단의 사회문화적 풍경은 동질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고, 내국인들과 뒤섞여 지내면서도 불확실한 경계를 긋고 있다. 제주도를 유동적인 거주지로 선택한 외국인들의 일상을 통해 작가 김옥선은 한국 사회에 인위적으로 배치되고 있는 이동의 빈도와 이동의 속도로 단일화된유목의 허구적 관념, 단일하고도 자기충족적인 것으로 가정된공동체의 이상적 관념고향에 대한 착각과 관련되어 있는 정착민 정체성에 대한 착각 등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관람자에게 끈질기게 질문하고 있다.

임 정 희 ( 미학미술평론, 연세대 겸임교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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