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속의 인물: 김옥선의 사진
장승연
빨간 색 티셔츠에 간편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채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남성의 이름은 케빈이다. 그는 현재 한국 제주도에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다. 그는 여가 시간이 생길 때마다 종종 이렇게 제주도의 숲길을 산책한다고 한다. 그에게 제주도는 여전히 신비로운 이국의 섬일까, 아니면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는 친숙한 공간일까. 이 장면은 아마도 평소 편안한 복장으로 틈틈이 숲길을 찾곤 하는 그의 일상적인 여가 모습을 찍은 것일 터다. 그렇게 사진 속 주인공이 마치 미지의 세계를 향하듯 곧 발을 디딜 숲을 향해 지긋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사진가 김옥선 역시 주변의 타인들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다.

<케빈, 휴머니스트(Kevin the Humanist)>는 김옥선의 <함일의 배(Hamel’s Boat)> 시리즈 작업 중 하나이다. 이 시리즈는 현재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작가가, 역시 제주도에 정착해 살고 있는 다양한 외국인들을 만나고 그들이 “한국이라는 이국땅에서 일상의 삶을 즐기는 방식”을 기록한 것이다. 이 작업을 시작할 때 김옥선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 전 제주도를 찾은 최초의 외국인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 한국 이름 함일)을 떠올렸다. 당시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불시착한 네덜란드인 하멜과 그 일행은 13년 동안 한국에 억류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외국인들은 자유롭게 한국으로 건너와 낯설고도 새로운 일상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이러한 외국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함일의 배>라는 제목을 붙인 작가의 동기는 이렇다. “그들은 어쩌면 자국 내에서의 답답한 일상을 탈출하여 이곳에서 또 다른 자신의 ‘배’를 만들어 또 다른 희망의 세계로의 탈출을 꿈꾸는지 모른다. ‘배’를 구하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믿음과 의지, 나는 그들에게 ‘함일’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들의 일상과 그 이면의 것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표류되지 않은 그들의 꿈은 무엇이고 다이내믹 코리아가 그들을 붙잡고 있는 원더풀한 이유에 대해….”(작가노트)
김옥선이 ‘외국인’이라는 대상을 향해 셔터를 누르게 된 계기는 이전 작업인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국적이 다른 남녀가 결혼하는 것을 일컫는 일명 ‘국제결혼’ 커플들을 찾아 그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이는 실제로 작가 역시 국제결혼을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한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확인하고 또 기록해 나간 과정이기도 했다. 그 속에는 경험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삶과 현실의 문제들이 과연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혹은 그저 개인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라는 작가의 질문이 담겨 있다.

<해피 투게더> 시리즈는 ‘국제결혼한 부부’라는 상황 말고는 특별히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일반인들을 촬영한 사진임에도, 보는 이에게 강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그러한 강렬함은 어디서 생성되는 것일까. 우선은 스냅 사진 같기도 하고 혹은 연출 사진 같기도 한 김옥선 사진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정면으로 카메라 렌즈를 응시한 모델과의 피할 수 없는 시선의 마주침에서 비롯되는, 의도된 어색함 역시 강렬한 잔상으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일종의 당혹감과 호기심을 함께 선사하는 그 분위기는 바로,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을 느닷없이 대면하는 순간의 어떤 낯선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해피 투게더> 시리즈는 거의 대부분 모델이 된 부부의 실제 집에서 촬영됐다. 작가는 삶이 이루어지는 집, 그 공간에 자연스레 배어나는 일상의 요소들로부터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두 남녀가 살아가는 방식이나 이질적 요소들이 슬그머니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인물을 둘러싼 ‘공간’이란, 사진이라는 정지된 장면에서 그 인물이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다른 방법으로 더욱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김옥선의 의도가 한층 강하게 압축된 작업이 바로 최근 진행한 시리즈 <노 다이렉션 홈(No Direction Home)>이다. <함일의 배>에서 작가가 제주도에 머무는 외국인들의 여가 취미와 아름다운 풍경을 엮어내어 시적인 장면들을 연출했다면, <노 다이렉션 홈>은 <해피 투게더>와 마찬가지로 실제 그들이 거주하는 집에서 인물을 촬영했다. 아마도 이번엔 그들의 ‘꿈과 휴식의 달콤한 순간’보다는 진짜 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사진 속에 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한 예로 작품 <멜라니(Melanie)>를 보자. 자신의 집에서 포즈를 취한 한 외국 여성이 등장한다. 전문 배우나 모델이 아니기에 카메라를 응시하는 표정에서 다소 긴장한 기색이 느껴진다. 작가는 인물의 그러한 ‘다듬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화면에 담고자 했다. 여기서 만일 이 사진 속 장면이 조금은 낯설게 다가온다면, 우리와는 다른 외관을 지닌 이 인물을 둘러싼 공간이 지극히 평범한 한국 주택이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어떤 이질감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주택이나 아파트에 흔히 쓰이는 정형화된 색상과 디자인의 건축 자재들, 창 너머로 보이는 친숙한 한국 동네의 풍경들. 이러한 그의 사진은 외국인들이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개인적인 삶의 테두리 너머의 영역, 어떤 사회 문화적인 현상으로써 연장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논의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김옥선이 늘 자신의 앵글에 담는 대상은 바로 ‘인물’이다. <해피 투게더>, <함일의 배>, <노 다이렉션 홈>에 이르는 그의 작업 여정의 첫 시작 역시 ‘인물’이 주인공이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가까운 주변에서 소재를 찾는 그는 신진 사진가로서 첫 작업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자신의 현실을 되돌아 봤다. 당시는 사회가 변함에 따라 여성들의 자의식이 역시 새로운 변화를 향해 꿈틀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작가는 주변의 친한 사람들부터 자원한 모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공간에 서 있는 평범한 여성들의 누드 사진을 촬영했다. 정형화된 여성의 미에 대한 기준을 어그러뜨린 당당하고 파격적인 <우먼 인 어 룸(Woman in a Room)> 시리즈는 그렇게 누군가 개인의 자화상이자, 그 시기 여성들의 당당한 자화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인물’에 다가가는 김옥선의 사진들을 좀 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그가 늘 사진의 포커스를 맞춰 온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타인’으로 일컬어 질 수 있는 이들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예전보다야 사회 분위기가 훨씬 변하긴 했지만, 이전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이 아닌 ‘타자’였고(<우먼 인 어 룸> 시리즈), 우리와 다른 피부색을 지닌 외국인은 늘 우리에게는 이방인으로 분류된다.(<함일의 배>, <노 다이렉션 홈> 시리즈) 또한 모든 경우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특수한 경우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국제결혼 커플이나(<해피 투게더) 시리즈>, 이성애만을 일반적인 것으로 보는 사회 속에서 성적소수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동성 커플(<You & I> 시리즈)은 모두 사회 속에서 평범함을 벗어나는 ‘타자’로 분류되어야만 하는 시선을 겪어야만 했거나, 혹은 여전히 겪고 있다.
김옥선은 이렇게 여러 인물들이 사진 촬영을 동참하고 자신의 사적인 공간을 카메라 앞에 드러낼 수 있도록, 무수한 시간과 공을 들이며 개인 한 명 한 명에 가까이 다가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완성된 사진에서, 막상 그들을 담아 낸 작가의 시선은 굉장히 덤덤하다. 그저 셔터가 눌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 포착된 그 인물의 어느 ‘빛나는 순간’만이 보는 이에게 강렬한 시각적 경험으로 남겨질 뿐, 그 이상의 친절한 설명은 없다. 마치, 그 안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평범함 속에서 발견되는 이질감과 낯설음이 묻어나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우리로 하여금 각자의 방식대로 다양한 삶과 일상, 생활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도록 유도하듯 말이다.



_ 장승연(아트인컬쳐 기자)_오늘의 미술_네이버 캐스트_2011.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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