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어떤 삶에 대한 경의
김윤경(아뜰리에 에르메스 큐레이터)
다게레오타이프라는 이름의 사진술이 공표된 1839년 8월19일은 사진이 공식적으로 첫 등장을 알린 날이다. 이후로, 사진은 1888년에 이스트맨 코닥이 최초로 롤필름을 장착한 카메라를 선보이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필름 카메라의 시장은 1920년대에 소형 카메라의 등장으로 점차 확장된다. 이러한 아날로그 사진의 성장세는 1981년에 처음 등장하여 2000년대에 폭발적으로 시장을 장악해버린 디지털 카메라로 인해 가로막혔고, 디지털 카메라는 2010년에 호황의 정점을 찍은 후 곧바로 2011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스마트폰 카메라에게 그 아성을 내어주게 된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약 25억 대로 추정되고,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의 95%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한다.1) 2016년 6월 21일에는 이미지 공유 위주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인스타그램의 사용자가 5억 명을 넘어섰다고, 그리고 그중 3억 명은 매일 인스타그램을 사용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됐다.2)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과 동영상은 매일 평균 9,500만 개에 이른다고 한다. 사진술이 발명되고, 아날로그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사진은 우리들의 삶 속으로 성큼 가까이 들어왔다. 사진의 기능도,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도 변했다. 그렇지만 오늘도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널리 보급되고 대중화되어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온 사진은 이제 넘쳐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범람한다. 그저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고, 쉽게 소비하고, 또 쉽게 삭제할 뿐이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사진들이 쉽게 등장하고 쉽게 사라진다. 그리고 쉽게 잊혀진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더이상 사진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러나, 김옥선의 사진은 그런 흐름들을 거스른다. 실제 본인의 모습이 포함되기도 했던 해피 투게더 연작(2002~2005)과 남편과의 관계로부터 출발한 함일의 배 연작(2007~2008), 낯선 이방인들의 모습을 담은 노 디렉션 홈 연작(2008~2010)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제주도의 곳곳에 버려지듯 자리잡고 있는 야자나무를 촬영한 빛나는 것들 연작(2011~2014)에서까지도.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눈앞의 대상을 촬영하는 김옥선에게 사진은 쉽게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쉽게 삭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3) 그에게 있어 사진은 단순히 눈앞의 피사체를 카메라로 잡아내고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고 기록이다. 그래서 김옥선 사진의 중심에는 늘 인물이 존재한다.4) 카메라를 앞에 두고 김옥선은 매번 낯선 인물과 마주하고, 오래도록 그 낯선 얼굴과 눈을 바라보고, 매번 용기를 내어 낯선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기록한다. 그래서, 우리도 그의 사진을, 김옥선이 마주했던 그 낯선 인물들의 얼굴을, 그 눈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인간이 행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그의 얼굴에 각인된다. 인간의 얼굴은 자신의 모든 비밀을 드러내는 한 권의 열린 책이다. 그러나 상형문자로 쓰이기 때문에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열쇠를 지닌 사람은 극소수이다.”5)

베를린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는 25점의 사진 연작 속에도 역시 낯선 인물들이 등장한다. 초기 작업6)에서 인물로부터 출발하여 풍경과 정물로 확장되었던 김옥선의 관심은 이번 연작을 통해 다시 인물로 전환되는데, 이전의 작업들이 그랬듯이, 생김새도 차림새도 모두 서로 다른,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든 여성들이 제각기 자신들의 삶이 펼쳐진 공간에 앉아 있는 사진들은 이 낯선—그리고 한편으로는 평범해 보이는—인물에 대해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7) 그러나, 그 낯선 듯 평범한 얼굴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각기 다른 인물들에서 미묘하게 ‘이질적이고 불안정한’ 어떤 정서가 공통적으로 포착된다. 김옥선이 주목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 사진 연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을 떠나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낸 여성들이다. 한인 간호여성의 독일(당시 서독) 집단 이주는 당시 독일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이수길 박사의 중개로1966년 1월에 시작되었고, 이후 해외개발공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간병과 요양에 요구되는 간호인력이 부족했던 독일, 해외 경험과 돈벌이를 희망했던 한국의 간호여성, 그리고 산업화와 그에 따른 외화 획득이 필요했던 한국 정부의 이해 관계 속에서 한인 간호여성의 집단 이주는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독일 정부의 정책이 변경된 1976년까지 이어졌다.
1966년 집단 이주가 시작된 이후 1976년 독일 이주가 중단될 때까지 대략 1만여 명의 한인 간호여성들이 단기계약직으로 이주했다고 추산되며, 이후 이들은 현지 잔류, 제3국 이주, 귀국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중 현지 잔류를 선택한 대부분은 독일의 경제 악화에 따른 강제 귀국 조치 등 독일 정부의 이주노동 대책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현지 여론과의 연대를 통해 낯선 땅에서 개척해낸 자신들의 삶을 지켜냈다. 지금까지 ‘파독 간호사’라는 명칭으로, 종종 조국 근대화의 역군으로 불려왔던 재독 한인 간호여성들, 이 이주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지탱해온 것은 그들의 개인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었다.

“1966년 4월 28일 김포공항은 독일 라인마인 지역으로 취업차 출국하는 128명의 간호사들과 그들을 전송 나온 가족, 친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날 선배 언니와 나를 제외한 모든 간호사들은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있어서 힘든 노동의 대가로 외화 획득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라고[기] 보다는 어떤 친선 문화 사절단이 대거 출국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의 마음은 그러한 분위기와는 무관하게 그냥 빨리 탑승을 했으면 하는 초조한 기분 속에 젖어 있었다. 누군가가 나의 뒷덜미를 잡고 너는 못 가 하고 끌어낼 것 같은 불안한 심정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8)

50여 년 전 모든 것이 낯선 그곳으로 떠날 때에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삶을 개척할 때에도, 그 낯선 곳에 자신의 미래를 걸어보기로 결정할 때에도 모든 선택은 개인적이었고 주체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불안했을지도 모르겠다. 내일이, 미래가 불안한 소수 집단에 속할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들의 정서. 공동체 안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된 존재, 지역적으로 소외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드러내온 김옥선의 작업은 이렇게 재독 한인 간호여성들의 삶과 조우한다.
눈앞의 대상,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개념에 기반한 김옥선의 베를린 초상은 지난 50여 년간 독일에 정착하고 생활해온 재독 한인 간호여성들의 ‘이주 한인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이질적이고 불안정한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투쟁과 연대를 통해 지켜온 이들 여성의 모습은 김옥선의 이전 작업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중립적으로 무표정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립적이고 무표정한 얼굴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드러내고 들려준다. 연속적으로 나열된 사진들 속 찰나의 순간들은 각 인물들 간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드러내고, 나아가 일상에 감춰진 개인의 존재, 개개인의 진실한 삶에 대한 진술을 드러낸다.
나란히 벽에 걸린 사진들을 다시 바라본다. 그 사진 속 얼굴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생김새도 차림새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든 평범한 여성들의 얼굴이 순간 낯설어 보인다. 그들의 차림새가, 화장법이, 그들 뒤로 보이는 가재도구가 순식간에 시간과 공간의 틈을 벌려 놓는다. 무표정하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인물들과는 달리, 그 벌어진 시간과 공간의 틈은 개개인의 삶과 존재의 치열했던 순간들을 오롯이 드러낸다.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마주했던 매 순간 김옥선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확인했던 모든 것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드러난다. 쉽게 찍을 수도 쉽게 지울 수도 없는 사진. 김옥선은 이렇게 개인의 존재, 진실한 삶을 객관적으로 진술함으로써, 그 존재와 삶의 실재함에 경의를 보내는 듯하다.


1) “국민 95%가 스마트폰 사용…보급률 1위 국가는?”, KBS NEWS, 2019.02.11, https://mn.kbs.co.kr/news/view.do?ncd=4135732
2) Today, we’re excited to announce our community has grown to more than 500 million Instagrammers — more than 300 million of whom use Instagram every single day. https://instagram.tumblr.com/post/146255204757/160621-news
3) ‘전통적인 방식’이라는 표현이 애매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SNS를 통해 소비하는 최근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대형 필름 카메라를 고수하는 김옥선의 촬영 방식은 상대적으로 ‘전통적’이라고 칭할 수 있을 듯하다
4) 제주의 황량한 풍경을 배경 삼아 제멋대로 자란 야자나무를 촬영한 빛나는 것들 연작에 등장하는 나무들조차 종종 인물처럼 보인다.
5)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이다미디어, 2014, 3.
6) 김옥선의 첫 작업은 나체의 여성들을 그들의 방에서 촬영한 우먼 인 어 룸 연작(1996~2001)이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해온 사진들과는 대조적인 접근을 보여준 작업으로, 발표 당시, 기존의 여성상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7) 알파벳과 숫자가 조합된 개별 사진의 제목 역시 쓸모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8) 김순임, “어려운 출국”, 재독한국여성모임, https://www.koreanische-frauengruppe.de/55?category=465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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