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시성으로 남은 역사의 소환: 김옥선의 《Berlin Portraits》전
이필(미술사/미술비평)
집요한 응시
김옥선의 《Berlin Portraits》은 베를린에 거주하는 전직 한인 간호여성을 무미하게 촬영한 다큐멘터리 양식의 인물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60대 중반에서 70대에 이르는 나이의 한국여성들 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집의 실내공간을 배경으로 화면중앙에 앉아있다. 그들은 감정의 표현을 절제한 무심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빤히 응시하고 있다. 김옥선에 의하면 이 사진들을 감상하는 관람자는 사진 속 여성들과 '접촉'의 경험을 갖는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이 여성들의 시선 은 한국에서 자신을 찾아온 작가의 시선과 뷰파인더를 매개로 만났고, 이제 그들의 시선은 전 시장의 맥락으로 들어와 카메라와 작가의 자리가 있던 위치에 서 있는 관람자를 향하고 있다. 인물사진은 초상화와는 달리 우리가 허구가 아닌 실제 대상을 본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는 《Berlin Portraits》을 보면서 마치 한인 간호여성들을 직접 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김옥선의 눈을 통해 우리는 한인 간호여성들을 만나는 것이다. 사진가들 대부분 이와 같이 대 상과 접촉하는 착각의 경험을 제공하지만 그 강도는 제각기 다르다. 어떤 사진가들의 인물 사진은 프린트의 표피만큼이나 얕고 곧 증발해 날아갈 것 같은 반면 어떤 사진가들의 인물 사진은 사진이 평평한 매체라는 것을 잊게 만들만큼 인물의 존재감이 깊고 강하게 다가온다. 《Berlin Portraits》에서 뒤로 갈수록 흐려지는 배경과 확연히 구분되는 한인간호여성들의 뚜렷한 신체는 그들이 마치 우리 면전에 있는 듯 직접적으로 접촉의 느낌을 준다. 관람자가 받는 접촉의 느낌은 우선 그들의 눈빛에서 온다. 거의 실물크기에 가까운 대형프린트 속에 있는 여성들은 무표정하게 관객을 응시하고 있지만, 그들의 침묵의 응 시는 집요하다. 관람자는 실물크기로 선명하게 눈앞에서 그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이 여성들의 무거운 응시를 피할 재간이 없다. 특히 전시장 중앙에 섰을 때 관람자는 사방에서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집요한 응시에 둘러싸인다. 나를 응시하는 이들의 강한 존재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그 존재감은 인물 사진이 갖는 신비한 느낌, 아우라로 총칭할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은 초창기 초상사진에는 인물의 주변에 어떤 아우라, 즉 관람자의 "시선이 그것을 파고 드는 동안 그 시선에게 충만감과 안정감을 주었던 어떤 매질(媒質)"이 있으며, 이 아우라에 상응하는 기술적 등가물이 "명암의 절대적 연속체"라고 보았다. 초창기 사진기술에 비하면 획기적인 기술의 변천을 겪은 만큼 김옥선 사진의 아우라는 벤야민이 말한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Berlin Portraits》의 아우라는 여성의 신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신체의 실제 물성을 물씬 풍기는 통합된 전체로서의 형상, 즉 게슈탈트의 존재감에서 온다. 선명하게 전사된 모델의 얼굴과 몸의 텍스처는 그들 삶과 함께 누적된 시간과 사건의 흔적을 드러낸다. 얼굴의 무표정은 피부의 주름과 결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손과 발 등 그들의 몸 전체에 새겨진 세월의 층을 함께 느끼게 한다. 전경, 중경, 후경으로 이어 지면서 점점 흐려지는 명암의 연속체를 배경으로 인물의 선명한 존재감은 더욱 강조된다. 묵직한 존재감을 가진 사진 속 여성의 침묵의 응시는 관람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관람자는 이미지를 향한 자신의 시선의 충만감과 안정감을 느끼기 보다는 역으로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 드는 그들의 응시에 각성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한인 간호여성들은 마치 우리는 역사와 함께 존재했고, 소수이지만 낯선 곳에서 우리의 영역을 개척했고, 지금도 이렇게 당당하게 존재한 다고 말하는 듯하다. 자신들의 집에서 가장 편한 장소를 골라 앉은 그들의 파고드는 응시에 낯선 전시장에 홀로 선 관객은 백기를 들고 싶은 심정이다. 낯섦과 친숙함, 문화적 혼종성의 실체 무표정에 가까운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낯설음은 형용하기 힘들다. 그들의 겉모습은 분명 노년으로 접어드는 한국 여성들인데, 그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타자가 아닌 낯선 타자로 다가온다. 자신의 뿌리인 한국사회의 테두리 밖에서 타자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은 동년배 한국 여성의 그것과 너무 달랐다. 한국인의 모습을 한 독일인인 그들의 가족과 삶의 기반은 독일에 있다. 그들은 독일 내에서는 한인 소수민족이며 국내에서는 해외 한인동포라는 이중적 타자성을 가진다. 그들의 모습에는 강인함, 자존감, 그리고 제3세계 여성으로서 독일사회의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상처가 뒤섞여있다. 김옥선이 베를린에 거주하는 전직 한인 간호여성의 존재에 주목하게 된 것은 2017년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전에 참여하면서다. 이희영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기획한 이 전시는 한인간호여성들의 독일 이주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했다. 김옥선은 전시를 위해 베를린에서 서울을 방문한 3인의 여성을 만나고 강의를 들으면서 그들의 현재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은 열망을 느꼈다고 한다. 김옥선의 삶도 장시간 혼종과 섞임, 여성으로서 홀로서기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작품의 제작 동기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리라 짐작한다. 해방 직후 출생한 간호여성들은 20대를 전후하여 독일로 해외취업의 길에 나섰다. 식민시기와 6·25 전쟁의 후유증으로 1960년대 한국사회는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시절, 전례 없는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유입이 낳은 독일내의 현실적 문제는 가히 짐작할만하다. 이들이 제3세계 여성으로서 겪은 직장 내의 차별, 결혼과 출산, 체류허가 및 영주권 획득 과정의 어려움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본인들이 자리 잡은 곳에서 낯선 타자로 인식됨과 동시에 자국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약소국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로 우뚝 서고 목소리를 내고 법과 제도를 개편해야 했다. 한국여성들은 모임을 결성하고 한국여성들의 사회적 위치, 법, 간호요원들의 문제 등에 대해 공개토론회를 열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차별에 맞서 주체로 성장해 갔다. 그들은 서로 의지했고 굳건하게 버텨내어 강건해 졌고 자신들의 삶이 나아지자 유사한 입장에 처한 이들을 돕는 사회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변적이고 타자적 위치에 맞서 자존감을 지키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온 한국 역사의 자랑스러운 인물들이다. 인생의 굴곡을 겪고 더 이상 현실적 문제에 허덕이지 않게 된 이들은 2018년 자신들 의 집 아늑한 공간에 앉아 그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한국의 여성 사진작가 앞에 앉았다. 한국 에서 20여년, 독일에서 50여년을 보낸 이들의 일상에 독일과 한국의 문화적 혼종성은 자연스럽게 스며있다. <BNP_8630BK>에서 여성은 느슨한 옷차림에 맨발로 오른쪽 다리를 끌어안고 편안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발끝의 하늘색 매니큐어를 따라가던 관람자의 시선은 벽에 세워져있는 불상엽서에 닿는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이 여성이 손님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표지이다. 이외에도 문화적 혼종성의 기호는 《Berlin Portraits》 곳곳에 나타난다. 독일의 집에 놓여있는 조그마한 나무 교자상, 첼로 옆에 곱게 걸려있는 오방색 부채, 드러내놓고 동양미를 발산하고자 비녀로 머리를 단장하고 화사한 개량한복 치마를 입은 모습 등이다. 그러나 스투디움으로 읽힐 수 있는 이러한 명백한 문화적 기호 없이도 이 여성들의 혼종성과 이중적 타자성은 그 자체로 드러난다. 김옥선의 사진은 무엇보다 그녀들의 얼굴과 포즈, 몸 전체에 새겨진 뿌리 깊은 혼종성을 드러낸다. 그녀들의 신체 자체, 존재 자체를 문화적 혼종 성과 이중적 타자성의 기호로 읽히게 한다. 사회적 다큐멘터리와 '유연한 유형학' 사진의 장르구분으로 보자면 《Berlin Portraits》은 사회적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라는 개념은 매우 광범위해서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거의 모든 사진은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다. 사회 적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실재 세계와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사진을 이용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사회적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기록(documents)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경험을 통해 공적 영역이라는 개념을 경험적으로 구축한다. 이러한 다큐멘터리 전통의 선구자인 리스(Jacob A. Riis)와 하인(Lewis Hine)은 사진을 이용해 사회 문제의 진실을 드러내고 널리 알렸다. 이 전통은 독일에서 신객관주의(New Objectivity)로 전개되고 잔더(August Sander)는 인물의 사회적 역할을 기준으로 삼는 초상 사진의 유형학적 모델을 정초한다. 사회적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시각적으로 보는 것과 그것에 대한 지식을 연결시킨다. 《Berlin Portraits》은 베를린 한인 간호여성들의 현재의 모습을 보는 우리에게 그들이 겪어온 질곡의 역사, 투쟁과 쟁취의 역사, 봉사와 헌신을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 사회적 다큐멘터리이다. 사회적 소수자, 특정 그룹의 진실을 드러내고자 김옥선이 선택한 방식은 유형학이다. 잔더가 정초한 유형학은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를 통해 중립성, 정면성, 반복성 등 엄격한 형식을 갖추게 된다. 김옥선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대상에 접근하고자 정면성, 중립성, 무표정성의 형식을 선택한다. 대상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유사한 유 형의 대상을 동일한 방식으로 재현하여 열거하고 반복하는 기록형식을 차용한다. 그러나 모델 에게 포즈의 자유를 허용하고 동일한 형식을 엄격하게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연한 유형학'이라고 할 수 있다. 《Berlin Portraits》의 중립성과 유형학적 전시 방식은 한인 간호여성의 혼종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그들을 둘러싼 역사적이고 사회적 맥락을 소환한다. 복수의 연작으로 그룹으로 전시된 여성의 초상은 개인으로서 선택의 여지없이 받게 된 타자라는 사회적 위치와 한국과 독일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중적 정체성과 문화적 혼종 성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기능을 한다. 또한 이들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최근 한국의 이주여성 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과 제도적 장치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한다. 한국 페미니즘 미술사에서의 의미 과연 한국의 남성들이 이들의 응시 앞에서 무엇을 느낄까. 이제 60대 중반에서 70대에 이르는 나이의 이 여성들을 단순한 역사적 기록의 차원을 넘어 관람자의 개별적 감상을 유발하는 예술사진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역사는 남성들 위주로 기록되어 왔다. 김옥선은 본인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남성중심 사회에서 온갖 굴욕과 현실적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을 지켜온 강인한 여성들의 역사를 쓰고 있다. 비가시성에 머물렀던 이들의 존재에 김옥선의 사진이 부여한 묵직한 존재감은 단순한 역사 아카이브가 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남성들이 주도한 한국 역사의 짐을 나누어진 베를린 한인 간호여성 들의 존재와 강인한 생명력은 김옥선의 예술사진을 통해 묵직한 역사의 실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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