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선, 베를린 초상 Berlin Portraits
김계원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조교수)
카메라가 머무는 자리
노년의 여성들 사진이 전시장에 나란히 걸려있다. 푸른색 짐 볼을 옆에서 귀여운 크록스를 신고 수줍게 웃고 있는 노인, 화사한 블라우스를 입고 두 손을 정갈하게 모은 채, 아마도 자신이 아끼는 자개장과 청자 앞에서 얌전히 앉아 있는 노인, 취미로 배우는 기타와 함께 가장 편안한 복장을 걸친 채 설레는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노인, 잔꽃무늬 새틴 원피스 밑에 팽팽하게 살을 쪼는 듯한 투명 발목 스타킹을 신고 푹신한 가죽 의자에 몸을 기댄 노인. 어슐라 르 귄의 말대로 노년이란 누구든 거기까지 이르는 자의 것이라면,1) 이들의 노년은 경제개발, 이주노동처럼 조금 더 특수한 역사의 궤적을 거쳐 다다른 곳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어떠하리. 시간의 흐름이란 모든 삶의 무게와 역사의 얼룩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쳐내어 덤덤히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모두가 늙는다. 노년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한다. 1990년대 중반의 <Woman in a Room>에서 최근작 <Museum of Innocence>에 이르기까지, 지난 20년 넘게 김옥선의 사진은 다양한 피사체를 거치며 차이와 경계에 대한 질문을 고유한 형식으로 던져왔다. 이 곳과 저 곳, 나와 너, 바다와 육지, 그 사이를 오고 가는 사람들, 다른 피부색으로 얽힌 가족들, 젠더와 인종의 스펙트럼, 가부장적 이성애 바깥의 관계들, 이종과 토종의 섞임 까지, 하늘 아래 도무지 같은 것이 있는지 새삼 의심해 볼 정도로 카메라는 일견 동일하게 보이는 우리의 삶 속에 이토록 빼곡히 박혀있는 차이의 존재감을 빠짐없이 길어 올린다. 김옥선의 사진은 그렇게 다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를 결연히 표명하면서 카메라를 바로 그 다름의 장소에 지긋이, 그리고 말없이 머물도록 한다. 이번에는 베를린의 외곽이다. 김옥선의 작업은 자신과 주변인을 둘러싼 정체성의 쟁투와 그것이 벌어지는 일상의 장소를 따라 천천히 이동해왔다. 서울에서 뉴욕으로, 다시 서울로 그리고 제주로, 베를린으로, 또 다시 제주로 파인더를 옮기는 과정에서 카메라는 피사체가 삶을 살아가는 공간 속으로 문자 그대로 들어가, 일상의 터전에 각인되어 있는 동일성과 차이의 흔적들을 조용히 추적한다. 30대 직장 여성, 국제 결혼 커플, LGBT 커플, 제주에 사는 외국인, 제주의 혼종 나무와 다국적 가족, 그리고 이번 전시의 재독 간호 여성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이동하는 동안 사진은 작가에게 단지 문제해결의 도구가 아니라, 어쩌면 그것이 아니었다면 스스로 보지 못했을 타인의 고유한 자리를 볼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베를린 초상>은 처음으로 모티브가 작가 자신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주어져서 시작된 작업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재독간호여성들을 주제로 삼은 전시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를 준비하며 작가에게 촬영을 의뢰한다. 출사는 크게 1, 2차로 나뉘어져 각각 한달 씩 소요되었다. 1차는 32명, 2차는 26명, 총 60명의 재독간호여성을 파인더에 담았고,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 24명의 사진을 선별하였다.2) 한국 여성들의 독일 이주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정책으로 1966년부터 약 10년간 집중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총 1만여명의 여성들이 파견되어 독일 내 한국 교민 1세대를 형성하였다. 이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는 주로 60-70년대 경제개발과 노동이주라는 거시사적 주제에 집중하고 있기에, 실제로 여성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주를 선택했으며, 왜 독일에 남거나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혹은 제 3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했는지, 어떻게 낯선 공간에서 삶을 헤쳐나갈 수 있었는지 해명하는 미시사적 재조명은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어 왔다.3) 김옥선의 카메라는 다시 한번 이주여성의 공간 속으로 성큼 들어가, 지난 반세기 독일의 ‘손님 노동자’로서 삶을 개척해왔던 이들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을 담아낸다. 안정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쟁투와 연대, 사랑과 결혼, 그리고 다문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끝에서 맞이한 이들의 노년은, 카메라가 힘주어 잡아내지 않아도 충분히 조용하고 담담한 파장들로 가득한 삶 그 자체이다. 물론 사진 속에서 우리는 평온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물들의 충돌을 목격하기도 한다. 첼로와 태극 부채, 코튼 셔츠와 공단의 한복 치마, 포멀한 블랙 수트와 캐주얼한 샌들이 뒤섞이며 펼쳐지는 무국적 풍경 앞에서, 혼종이나 트랜스로케이션과 같은 인문학의 ‘뜨거운’ 주제를 더해보고 싶은 학자로서의 욕망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노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고, 황혼기에 접어든 여성의 손과 발에는 천 번의 만남과 이별처럼 지나간 시간의 덧없음이 쓸쓸히 베어있다.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토록 부끄러운 내 몸에 익숙해 지는 일이며, 또 이를 적당히 숨길 수 있는 지혜를 습득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명을 촬영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리는 작업 과정 속에서, 작가는 되도록이면 연출과 개입을 자제하고, 가장 피사체다운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여성들에게 편하게 앉아있는 포즈를 취하도록 부탁했다.4) 그 때문인지 카메라를 마주한 이들의 시선은 초연하고 담담하다. 거기엔 분명 지나온 것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다가올 것을 불안해 하지 않는 노년의 우아함이 있다. 그러나 사진들에 또다른 힘을 불어넣는 것은 마모된 육체가 던져놓는 불편함의 흔적들이다. 셀 수 없는 손주름, 건초염에 시달리는 손목, 퉁퉁 부은 발, 꼬불꼬불 튀어나온 다리의 정맥, 툭 불거진 무릎, 아픈 허리와 어깨, 그래서 비스듬히 앉아있을 수 밖에 없는 육신의 피곤함은 화사한 메이크업으로도, 원색의 드레스로도 감춰질 수 없는 노년의 숙명이다. 대형카메라는 이를 놓치는 법이 없어 잔인할 만큼 충실하게 늙어가는 신체를 기록하지만, 그것에 은유를 보태는 것은 아날로그 필름 특유의 부드러움이다. 이 시대 관객의 눈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날카롭고 선연한 디지털 이미지에 익숙해 있을테지만, <베를린 초상>이 아름다운 것은 인물들의 이야기에 더욱 섬세하고 정확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필름의 오래된 성의 때문일지도 모른다. <베를린 초상>은 그렇게 근대화의 역군, 인권투쟁 선구자, 1세대 이주노동자 등, 크고 굵직한 역사의 이름 뒤에 가려졌던 일상의 장소, 신체의 시간 앞에 조용히 멈춰선다. 그것은 각자의 일상에서 펼쳐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풍경을 포착하여, 50년의 쟁투 끝에 다다른 삶이 그려내는 무늬들을 가장 고전적인 사진의 언어로 제시한다. 김옥선에 따르면 자신에게 사진은 삶을 “심심하지 않도록” 하는 도구이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타인에게 다가갈 수 없었고, 관계를 만들 수 없었으며 그래서 어쩌면 기득권을 가진 그저 그런 오만한 중산층 여성”이 되었을 거라 말한다.5) 우리는 사진 속에서 작가가 관계를 상상하려는 의지를 발견한다. 그것은 뜨거운 선동의 외침은 아니지만, 낮고 덤덤한 언어로 나와 너의 삶의 무늬가 포개어지는 지점을 그리는데 집중한다. <Woman in a Room>에서 <베를린 초상>까지 김옥선의 사진 속에는 자신의 공간으로부터 삶을 개척하여 나아가는 여성들이 있다. 서울 도심의 원룸에서 나체를 드러내고 서 있는 30대 직장 여성들과, 반세기 이상 이국에서 삶을 개척한 노년의 여성들이 앉아있는 풍경에 접점이 있다면, 아마도 이들과 함께 나아가기를 선택했던 카메라와 그 뒤에 자리한 작은 믿음 같은 것이 아닐까. 관계를 상상하고 확장하려는 의지,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능력에 대한 믿음.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1) Ursula K. Le Guin, No Time to Spare: Thinking about What Matters, Mariner Books: Boston and New York, 2017. p. 9. 2) 작가는 베를린에서 잠시 서울로 방문한 재독간호여성 세 분과 사전 미팅을 진행했는데, 이 때부터 그분들의 삶이 너무 궁금하고 직접 방문하고 싶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설레었다고 한다. 또한 실제 작업에 들어갔을 때 시간상 제약으로 하루에 한 명의 집을 찾아가 그 사람의 사진을 완성하도록 진행되었다고 한다. 관건은 하루 안에 대상의 대상다움을 포착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매우 간절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말한다. 2019년 6월 22일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작가와 나눈 대화에서 발췌한 내용 3) 어떤 이는 가족을 돕기 위해, 또 어떤 이는 선진 국가에서의 경험과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고자, 다른 이는 한국의 억압적 현실과 젠더 불평등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20세 초반에 이주 노동을 선택한다. 사실 그 시절 독일로의 노동이 주는 여성들이 외국을 갈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4) 2019년 6월 22일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작가와 나눈 대화에서 발췌 5) 2018년 10월 19일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작가초청세미나>에서 진행한 작가와의 대화 중 발췌 BACK TO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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