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선, 《평평한 것들》
김남시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인물/사물과 그 배경

제주도로 이주했을 때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김옥선 작가는 '풍경'을 찍을 수 없었다고 한다. 풍경이라는 건 대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거기에는 누가,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가 분명치 않은 대상이다. 늘 어딘가에 (살아)있는 인물과 사물에 초점을 맞추어왔던 작 가로서는 이 모호한 대상을 카메라에 담기 어려웠던 것이다. 김옥선의 사진은 무엇이, 어디 있는 것인지 분명치 않은 풍경이 아니라 분명히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는 무언가를 찍는다. 이 작가의 나무 사진이 인물 사진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사진이 나무들을, 사람처럼, 그들이 '있는' 배경 속에서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김옥선 사진의 나무들은 그들이 서 있는 곳에 대해, 얕은 담장 안 빨래줄에 널린 흰 빨래와 뒤쪽의 비닐하우스, 삐딱하게 서 있는 전봇대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전기줄을 함께 이야기한다. 이런 사정은 사람이 등장하는 <함 일의 배> 연 작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명 한 명 호명되는 이 외국인들 - peter the nomad, jason the bard, victor the tour guide, katharine the dreamer ... - 은 그들이 서거나 앉거나, 누워 있는 제주도의 숲, 해변, 거리, 바람, '소변금지'라고 쓰인 담벼락, 시장, 학교 운동장을 함께 말한다.

나는 이 점이 김옥선 사진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가의 사진에는 분명하게, 중 심 피사체(인물이나 사물)가 있고 그들이 '있는' 배경이 있다. 이 배경은 촬영 시점에 사진 속 나무나 인물, 사물이 존재하던 장소다. <해피 투게더>에서 그것은 국제결혼 커플들이 사는 집이고, <함 일의 배>에선 이 외국인들이 살아가는 제주도이며, <no direction home>과 <아다 치 초상 Adachi Portraits>에서는 결혼이나 직장으로 지금 그들이 거처하는 한국 또는 일본이다.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결혼, 이주, 구직 혹은 이식(제주도 야자수처럼)을 거쳐 지금 여기에 있는 이들은 바로 그를 통해 자신의 장소와 배경을 갖게 된 존재들이며,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는 존재들이다. 김옥선의 사진은 이 존재들과 지금, 이들이 있는 장소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바로 거기에, 그 장소에, 무한성과 지각하는 주체(operator 나 spectator) 사이에 있었음"1)을 본질로 갖는 사진을 통해 김옥선은 '이들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이야기한다.2)

이 점에서 김옥선의 사진은 배경 없이 인물만을 클로즈업해 찍는 리차드 아베돈 Richard Avedon이나 로버트 메이플소프 Robert Mapplethorpe의 사진과는 다르다. 한 인물만이 화면 전체를 채우는 사진,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지 않는 사진, 배경이 없이 온전히 피사체에만 주목하는 사진은, 그렇게 찍힌 인물이나 사물을 그들이 존재하는 장소에서 분리시킴으로써 탈역사화시킨다. 구체적인 배경이 지워진 사진 속 인물들은 이로써 특정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하나의 보편적 아이콘이 된다. 이와는 달리 김옥선의 사진은 지금, 여기에 있는,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바로 이 존재들을 가리켜 보여준다.

전시 《평평한 것들》에는 지금까지 김옥선 작가가 찍어온 인물과 나무, 사물의 사진들이 어떤 구분이나 구획 없이 뒤섞여 전시장 벽에 걸렸다. 모든 걸 2차원 평면에 담아내는 사진의 매체적 속성이 이런 디스플레이 방식과 결합해 이들 사이의 존재론적 평평함을 더 부각시킨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관심 방향이 한 걸음 확장되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전까지 김옥선 작가의 작업이 주로 '어떤 인물이나 사물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이야기해왔다면, 이 전시에서 작가는 이들이 지금, 여기 있게 된 사정과 이들이 지금 있는 곳과 떠나온 곳에 대한 관계로까지 관심을 넓혔다. 신작 영상 <홈 a kind of home>에는 일본에서 태어나 한평생 일본에 살았으면서도 첫 한국 방문 때의 감격을 기억하는 교포 2세, 16년째 일본에서 직장생활 중 이면서도 일본 내 외국인들에게 더 공감하는 한인 여성,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의 정체성 갈등을 감지하는 결혼 이주여성의 인터뷰가 '걷는 야자수'의 모습과 교차 편집되어있다. 이주해 정착한 곳에서도, 그를 위해 떠나온 곳에서도 온전히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이 '주변인'들의 모습이, 난데없이 이식되고도 제주의 추위와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아 지금의 혼종적 풍경의 일부가 된 야자수와 오버랩된다. '걷는 야자수'는 이주와 정착 의 시간을 감내하고 지금, 여기의 혼종성을 이루며 살아가는 이들의 상징이다.

이런 '걷는 야자수'는 사진 연작 <신부들, 사라 Brides, Sara>에도 등장한다. '사라'는 한국 최초의 사진 신부 이름에서 왔다. '사진 신부 picture bride'라는 낯선 명칭은 1920 년대 한국 여성들이 하와이 노동 이민 중이던 한국 남성들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제 겨우 13, 14살이던 소녀들이 부모와 고향을 떠나 먼 나라로 이주해, 만나본 적도 없는 남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일 결심을 하는 데 사진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앨런 브렌너트의 소설 <사진신부 진이>(원제 "Honolulu")에 따르면 이 과정은 동네 매파 아주머니의 말에서 시작된다. "너희도 우리나라에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게다. 그러니 태평양의 하와이라 는 섬에 1,500명의 조선 사내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 않겠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내들 대부분이 섬에서 재산을 모은 혼기 꽉 찬 총각들이지만, 혼인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여인네가 없대. 더군다나 조선인이 아닌 여자들과 맺어지고 싶어 하지 않거든...그런 외로운 남자들에게 신붓감을 찾아주는 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이란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조선인들을 돕는 일이니 이게 또 애국이 아니고 뭐겠니? 경상도에서 거의 스무 명이 넘는 여인들을 중매해주었지. 그들 모두 하와이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3)
이 말에 끌린 소녀들이 "검은 양복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이국적인 나무들과 호화로운 저택 앞에 서 있는 남자들의 사진"4)
을 보고 마음을 굳힌 후, "중매 선 아주머니가 해주는 대로 입술과 얼굴을 곱게 화장한 어린 여인의 [스튜디오] 사진"5)
을 찍어 보내면 남성들은 사진 뒷면에 "내 성은 노 씨이며, 섭섭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신부로 선택했습니다"6)
라고 써 보내온다. 이로써 혼인 약정이 체결된 것이다. 불안과 기대를 품고 증기선으로 열흘 가까이 걸리는 하와이에 도착하고 나서야 소녀 들은 뒤늦게, 남편 될이가 부유한 사업가가 아닌 사탕수수 농장의 값싼 노동자라는 걸 확인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일어난 결혼 이주의 구체적 사례이자 그 과정에 사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사진신부'는 김옥선 작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주제였음에 틀림없다. 문제는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눌 당사자들이 거의 생존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하와이에 남아있는 이들의 집터나 기념관, 자료들을 찍어올 수는 있겠지만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기록에 초점을 맞춰 작업한다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7)
그래서 이 사진 신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과정을 거쳐 한국으로 결혼 이주한 '지금 이곳의 사진 신부들'을 다루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태생적으로 사진에 각인된 기록의 역량보다 지금, 여기 있는 존재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무게를 두는 김옥선 작가다운 선택이다. 그런데 <신부들, 사라>의 사진들은 작가의 이전 사진들과는 크게 달라졌다. 인물들이 입은 복장은 전혀 일상적이지 않으며 이들이 취한 포즈 역시 과하게 연출적이다. 비스듬히 놓인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팔을 걸치거나, 양손을 허리춤에 대고 몸을 카메라로 향하거나, 손을 다리 위에 모아 올린 채 카메라를 향해 엷은 미소를 짓는다. 더 결정적인 건, 김옥선 작가의 이전 사진들과는 달리, 인물 들이 거리나 집 등의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부분 조명으로 발광 효과를 낸 백드롭이라는 인공적 배경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무대화된 현실과 무대화되지 않은 현실

<신부들, 사라>의 사진이 이렇게 전형적인 프로필 사진이 된 이유는 분명하다. 이 작업이 황 학동의 스튜디오 사진사에게 의뢰된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김옥선 작가의 이 첫 번째 개념적 작업이 이 작가 사진의 중요한 포인트인 사진과 현실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한 인물이나 사물을 찍을 위치를 선택하고, 그 위치에 맞게 대상을 조정하고, 뷰파인더에 보이는 이미지들 중 하나를 선택해 셔터를 누르는 사진 촬영의 몸짓8)은 그 자체 로 이미 현실을 일정한 방식으로 '무대화 staged'한다. 하지만 화면 전체를 온전히 작가가 구성하는 회화와는 달리 피사체에서 반사된 빛이 감광되어 생겨나는 사진 이미지에는 사진가가 완전히 컨트롤할 수 없는 현실의 일부가 침투해 들어온다. 이로 인해 사진에는, 발터 벤야민의 탁월한 표현대로, "사진가가 제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그의 모델의 자세도 세밀한 데까지 계획했다손 치더라도" 현실로부터 유출된 "미세한 불꽃같은 우연, 여기와 지금"9)이 담기기 마련이다. 회화와 비교하면 사진은 "무대화되지 않은 unstaged 현실에 탁월한 친화성"10)을 갖지만, 그럼에도 사진에서 "무대화된 현실과 무대화되지 않은 현실의 경계가 유동적"11)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옥선의 사진은 '무대화된 현실과 무대화되지 않은 현실' 사이의 미묘한 틈새를 만 들어낸다. 예를 들어 작가에 의해 지시되었음이 분명한 <해피 투게더> 인물들의 포즈 - 한 명 의 시선은 카메라를 향하고 다른 이는 외면하는 - 와 그들이 있는 배경(과 사물들)은 작가에 의해 '무대화된 현실'이지만, 우리는 어떤 종류의 관음증적 욕망에 이끌려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 이 사진 속에서, '무대화되지 않은 현실', 예를 들어 이 파트너들의 내적 관계를 보고 있다 고 믿는다. 제주 야자수를 닮은 배경에서 찍은 다문화가정 2세들의 초상사진(<공원초상 Park Portraits>)에서도, 베를린의 가정집(과 거기 놓인 물건들의 혼종성)을 배경으로 한 파독 간호사들의 초상사진(<베를린 초상 Berlin Portraits>)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부들, 사라 Brides, Sara>의 프로필 사진은 처음부터 완전히 '무대화된 된 현실'의 형식을 취한다. 황학동 스튜디오의 사진가는, 모든 프로필 사진가들이 그렇듯, 이 이주여성들이 취해야 할 포즈와 시선의 방향, 표정 등을 면밀히 지시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대화된 현실'에 겹쳐있는 '무대화되지 않은 현실'이 미세한 불꽃처럼 번뜩이며 모습을 드러낸다.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다른 옷도 아닌 바로 자신이 떠나온 나라의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나타나, 사진가가 지시하는 한국인의 프로필 사진 스타일 - "남녀 모두 정장 차림에 이마와 귀가 보이는 머리 모양을 하고 입꼬리를 살짝 올린 표정", "입을 꼭 다문 굳은 표정보다는 입가를 살짝 올린 표정이 웃는 인상을 나타내며 상대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12) - 에 자신을 맞추는 이들의 몸짓 말이다. '인물이나 사물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보여주는 김옥선 사진의 특징은, 이렇게 해서 작가가 직접 촬영하지 않은 <신부들, 사라 Brides, Sara> 연작에도 그대로 관철된다. 여기서 인물들은 그들이 '있는' 배경에서 분리된 것도, 그 배경이 사라지거나 제거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입은 옷과 포즈, 제스쳐와 표정 자체가 이 결혼 이주 여성들이 지금 그 안에 '있는', 마치 백드롭 아랫단에 붙어있는 청 테이프처럼, 지극히 구체적인 배경이다. 사진 속 이들의 표정이,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을 망연히 바라볼 뿐인 '걷는 야자수'의 표정과 겹쳐 보이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끝)


1) Roland Barthes, Die helle Kammer, Shurkamp 1989, 87.
2) 다문화가정 2세들을 제주도 야자수와 유사한 식물적 배경에 위치시켜 촬영한 <Park Portraits> 연작에서도 김옥선의 작업이 인물과 배경의 관계를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앨렌 브렌너트, <사진 신부 진이>, 59
4) 앨렌 브렌너트, <사진 신부 진이>, 60
5) 앨렌 브렌너트, <사진 신부 진이>, 79
6) 앨렌 브렌너트, <사진 신부 진이>, 63
7) 작가의 이메일
8) 빌렘 플루서, <몸짓들> 중 “사진촬영의 몸짓”
9) Walter Benjamin, GS Ⅱ-1, 371.
10)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사진적 접군”, <과거의 문턱>, 65
11)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사진적 접군”, <과거의 문턱>, 66
12) "이력서는 사진이다...정장입고 제대로 '찰칵', 한겨레 신문 (2011-10-12).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005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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