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선 《평평한 것들》
개인과 역사가 그리는 평평한 지형도
김소희 (뮤지엄한미연구소 학예연구관)
2023년 6월 9일부터 8월 13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옥선의 《평평한 것들》은 20여 년 작가가 카메라에 담은 얼굴들을 총망라한다. 국제결혼의 가족초상인 <해피 투게 더>부터 국내 이방인 초상의 <함일의 배>, 독일에 정착한 한인 간호사 연작 <베를린 초상>, 국외에 정착한 결혼이주여 성의 <아다치 초상>과 <신부들, 사라>, 그리고 이주 2세들이 등장하는 <공원 초상>까지 평평한 사진의 표면에서 동시대 확장된 이주의 지형도를 펼쳐내 보인다.

김옥선의 초상 작업은 꾸준히 이주자들의 행로를 조명 해왔다. 이주는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혹은 빈곤과 분쟁, 억압과 재난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동하는 인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이주는 결코 현대의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규모와 범위 면에서 전 지구적 현상으로 점차 확산되어 온 현상이다. 예외적인 소수, 주변, 타자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되었던 김옥선의 창작 활동은 이동, 정착, 이산을 품고 있는 사회적 이동으로 나아가 전 지구적 이주 현상과 보다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개인의 사적 이동조차도 (그렇지 않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다양한 사회적 제도에 따라 혹은 정치, 경제, 문화의 세계적인 움직임 속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옥선은 여성을 중심으로 20세기 우리주변의 다양한 삶의 양태를 야기한 이주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오랜 기간 몰두해 왔다. 그리고 이는 20세기 이주의 지형도를 폭넓게 그리고 있다. 작가 자신을 비추었던 하나시선은 사회와 문화 그리고 지역과 국가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우리시대의 사회적 초상까지 그 가시적 영역을 넓혀 다자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전시는 2023년 신작 <신부들, 사라>의 초상으로 시작 된다. 김옥선은 2019년 독일 한인 간호사의 동시대 초상을 <베를린 초상>으로 발표한 이래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간 이주여성에 보다 주목했다. 서유럽의 고도성장기 노동인력 공급의 한 형태였던 1950년대 '초청노동자 제도'는 당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독일로 유입시켰다. 한국은 노동 인력의 송출국으로서, 광부와 간호사를 파독했다. 작가는 이들을 세계시장이나 국가 간의 관계 등의 거시적인 개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이주자 자신들의 개인적 관계에 집중한 미시적 개념으로 이주여성을 재조명했다. 이는 이후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존재했던 이주여성에 대한 폭넓은 조사로 이어졌고, 작가는 미주 이민 1세대인 '사진신부'에 주목했다. 제목이 주지하는바, <신부들, 사라>는 일제강점기 결혼이민을 통해 하와이로 건너간 최초의 여성 이민자 최사라(당시 23세)와 신부들을 일컫는다. 1900년대 초 하와이에 한인들이 계약노동자로 이주하면서 미주 지역의 공식적인 노동이민이 시작되었다. 값싼 노동의 공급과 국내로의 외화 송금은 합법적 노동 이주의 경제적, 사회적 조건을 충족시켰다. 한인 노동자들의 생활 개선을 위해 사진을 교환해 혼인하는 '사진결혼법'이 제정되자, 결혼을 위한 여성의 이민이 허용되었다. 이렇게 사진 교환만으로 하와이로 건너간 여성들을 사진 신부라 불렀다. 이와 같은 사회적 배경 하에 작가는 120여 년 전 식민 치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가난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혹은 새로운 삶을 찾고자 타국에서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했던 한인 1세대 이주 여성을 오마주하며, 낯선 한국의 땅에서 정착의 길을 선택한 결혼이주여성의 모습을 <신부들, 사라> 초상 연작으로 선보인다.

작가는 특히 사진이 초기 이민의 역사를 매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수많은 최사라는 오직 사진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이민 제도를 통해 타국에 자리 잡는다. 사진은 이주 여정의 허가증인 셈이었다. 명함판 사진이 초상 사진의 민주화를 이룬 것처럼, 조선과 하와이에서 주고받은 이 '평평한' 사진은 억눌린 시대와 유교적 가치관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하여 이국의 땅에서 '평평하게' 살기 위해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주체적 여성들의 초상이자 새로운 기회에 대한 역사적 산물이었다. 작가는 이 '평평함'을 찾아 낯선 타지에 자리 잡은 '이주신부'에게서 과거 한국 역사 속의 사진신부 얼굴을 대면했다. 그리하여 작가는 주인공의 내밀한 사적 공간 안에서 인물의 정면성을 강조했던 기존의 초상 형식에서 벗어나 상투화된 초상사진을 통해 '이주신부'를 새롭게 다루고 있다. 여기 또 다른 신부들은 나르시시즘을 만족시키는 자세, 표정, 앵글을 마다하지 않았고, 모국을 대표하는 복장이나 소품을 동원해 사회적 지위를 돋보이게 했다. 인물의 장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은 가리면서 모델을 이상화시키는 해묵은 초상화의 관례를 그대로 답습하는 초상사진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상화된 이미지 사이로 오히려 지난한 시간의 흔적들이 훅 하고 삐져나온다. 카메라를 향한 신부들의 주름진 표정, 거친 손등, 오래된 스웨터, 어색하게 취한 자세, 인위적인 그래픽 배경, 허술해 보이는 전통 예복과 장신구 등은 서로의 부조화 속에서 이주신부의 녹록치 않았던 현실을 증언한다. 이주와 정착의 과정 속에서 한 개인이 마주해야 했던 무수한 갈등과 마찰, 편견과 차별이 초상의 표면바깥에 함축 되어 있다.
사진은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사진에 대한 흥미롭고도 탁월한 비평을 가했던 미국의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사진의 형태로 무엇인가를 보는 것'은 세상을 조우하는 것과도 같다고 하였다. 그는 "저기 표면이 있다. 이제 저 표면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 그 표면이 이런 식 혹은 저런 식으로 보여질 때 현실은 어떻게 보일는지 말이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사진은 우리를 끊임없이 사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김옥선이 재현하는 초상 사진의 바깥은 그 내부가 알려 주지 않은 역사를 끌어안고 있다. <베를린 초상>에서 베를린에 정착한 이주 여성의 얼굴이 한국의 근현대 역사를 내면화하듯, <신부들, 사라> 역시 1980년대 이후 아시아 여성이주의 기하급수적인 증가 추세에 대한 경험을 내면화하고 있다. 이는 국내 인구 이동의 변천과 경제 지형의 변모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이주여성의 초상은 곧 이주 변천의 사회적 초상이다. 개별 작품의 제목이 <해피투게더>나 <함일의 배>처럼 개인이 아니라 연작의 제목으로 나열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작 <아다치 초상>은 재일교포 2세와 일본의 국제결혼 가족의 초상연작으로, 역시 해외 이주의 형태를 다룬다. 일본은 훨씬 이전부터 국제이주와 국제결혼을 수용한 곳으로 작가의 시선은 언어, 문화, 사회의 차이와 경계를 드러내는 존재로서 개인으로 향한다. <acp_srw259>에서와 같이 <아다치 초상>은 피사체와의 일정한 거리, 인물 중심의 프레 임, 정면성, 무표정 등 이전의 다큐멘터리적 스타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인물의 다양한각도, 카메라를 향한 자세 그리고 그들 주위의 자연 등 아다치의 초상은 보다 개인의 일상과 내면에 집중한다.

이번 전시는 신작과 기존 발표작의 구분 없이 비선형적 구성, 비연대기적 구성에따라 배열되어 있다. 각 연작들은 선형적 동선과 순차적인 흐름을 깨뜨리고 인물 간의 이동으로 관람자를 이끈다. <bsp_ptm814> 필리핀 신부는 제주도로 흘러 들어와 한켠에 기울어져 있는 야자수 <untitled_hoesu660>과 만나고 일본 아파치 어느 공원에서 먼 곳을 응시하며 프레임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파란 스웨터의 <acp_ych626>과 이어진다. 그녀의 시선은 베를린에 정착한 파독 간호사 <bnp_8628kg>와 연결되는데, 이주와 정착의 지난한 시간을 지우기라도 하듯 화려하게 단장한 의상과 정성스럽게 매만진 외모, 문화적 소양을 돋보이게 하는 서재를 배경으로 현재의 그녀를 재정의 내린다. 그리고 베를린의 오래된 시선은 흘러 <함일의 배>연작에서 정체성을 찾아 낯선 제주도에 체류하며 다음 행선지를 찾는 듯한 젊은 여성의 초상 <grechen the wanderer>와 대면한다. 초상과 초상은 서로를 마주하기도 하고 나란히 조우하기도 하며 각자의 응시를 이어 받는다. 사진이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듯, 김옥선의 《평평한 것들》은 세대와 장소, 인종과 국가를 초극하는 개인과 역사 사이의 평평한 지형도를 재현한다. 인구의 이동이 늘 역사의 일부로 존재해 왔듯, 우리 주변의 존재들을 '평평하게' 바라볼 것을 작가는 무덤덤하지만 반복적으로 그리고 다자의 시선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_사진예술 2023년 8월호 전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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